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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놈, 저금하는 놈 1 / 이윤기

칠부능선 2010. 8. 29. 16:03

공부하는 놈, 저금하는 놈 1

이윤기




  내 고향에는 “공부하는 놈과 저금하는 놈은 아무도 못 당한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저금하는 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공부하는 놈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

  그것을 나는 써야 한다. 자화자찬의 기미가 역력하지만 1947년생에 어울리는 순정함으로 써야 한다.

  나의 삶은 몇 차례 소스라침의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경험에 대해서 나는 쓰고자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12년 연상의 형님이 《명심보감》을 배우고 있을 당시의 일이다. 나도 ‘어깨너머로’ 그 책을 외웠다.

‘동악성제 수훈왈, 일일행선에…’ 이렇게 시작되는 구절이 있었다. 원문인 한문을 아직도 외우고 있으나 젊은 독자들을 위해 한글로 풀어놓겠다.




      동악성제께서 내리신 교훈은 이러하다.
      하루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복을 금방 받는 것은 아니지만
      화는 스스로 멀어진다.
      하루 나쁜 일을 한다고 해서
      화를 금방 입는 것은 아니지만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명구에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당시의 나는 충분히 ‘까져’ 있었던 모양이다.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에 실어내는 사람이 다 있었구나 싶었다. 세상이 참 어처구니없이 넓구나 싶어서 아뜩했다. 봄 뜰의 풀과 같이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착한 일 하는 사람’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읽고 있었다. 이때 일을 얘기하면,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다’는 말을 참말로 믿었느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믿고말고. 나는 아직도 이 금과옥조를 철석같이 믿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던 그 삽화를 나는 잊을 수 없다. 판자문 앞에 선 아이가 손가락 마디로 그 문짝을 살짝 건드리려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 무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나는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대답했다.

  아이는 지금 문을 열려는 중입니다.

  아니다. 이 아이는 지금 ‘노크’라는 것을 하고 있다.

  당시 우리 집 변소에는 문이 없었다. 우리 마을의 변소는 대부분 달팽이꼴로 지어져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세칭 ‘머슴뒷간’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변소의 문은 거적대기였다. 나는 그때까지 나무문이 달린 화장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노크’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수밖에.

  그런 행위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수밖에.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두 번째 소스라침의 경험이다. 아, 이 세상에는 내가 ‘노크’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구나 싶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책의 바다를 만났다. 소년소녀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다시 쓴 백 권의 ‘세계명작전집’, 백 권의 ‘세계위인전집’을 만난 것이다.

  읽으면서, 읽고 나서 나는 몇 차례의 소스라침을 경험했다.

  내가 모르던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있었구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세상에는 이렇게 훌륭한 위인들이 있었구나 싶었다. 나도 그런 ‘명작’을 남기는 ‘위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그리고 은밀하게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성서를 만났다. 《신약성서》를 먼저 읽었다. 그리스도가 쏟아내는 말의 아름다움은 세계명작전집이 들려주는 말의 아름다움을 저만치 따돌렸다. 세계명작의 언어는,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되돌려준 말 한마디 ‘그것은 너의 말이다’, 이 한 마디 앞에서는 창백해 보였다. 그리스도는 위인전집에 등장하는 백 명의 위인들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베푼 기적을 한 점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다.

  《구약성서》가 나에게 안긴 감동은 거의 충격 수준이었다. 명작은 ‘명 캐릭터’의 창조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데, 《구약성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캐릭터는 모조리 창조하고 독점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모세의 기적, 솔로몬의 지혜, 에제키엘의 환상을 송두리째 믿었다. 나는 그 믿음을 간직한 채 소년 시절을 건넜다. 그 믿음이 오래간 것은 아니다.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이따금씩 반성한다. 그러나 성서를 읽으면서 쓴 엄청난 시간에 대해서는 반성의 기미조차 추호도 없다.

  청소년 시절, 늘 나의 뇌리를 맴돌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공부와 독서는 무엇이 다른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던 나에게는 공부가 곧 독서였다. 독서가 곧 공부였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면 나는 대위법이나 화성학을 공부했지 헤밍웨이를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던 나에게 학교는 음악, 미술, 화학, 생물, 수학, 심지어는 부기법簿記法이나 주산珠算 놓기까지 강요했다. 항변하는 나에게 학교는, 전인全人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공부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전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공부를 자꾸만 방해하는 공립학교를 나의 학교에서 퇴학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빈 들에서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