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추석 전후

칠부능선 2024. 9. 18. 20:08

토욜,

오빠랑 엄마께 가기로 했는데 오빠가 아파서 못 온다고 한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통화를 하니 거의 말을 못 알아들을 지경이다. 아고 ...

남편과 둘이 엄마한테 다녀왔다.

가는 길에 은자네서 전을 얻어갔다. 나머지는 하던대로 ... 이런~~ 날라리.

평소에 횅하던 주차장이 꽉 찼다. 한바퀴 돌아 참사랑묘역으로 갔다. 처음 천주교묘지 산등성을 올라봤다.

여전한 엄마를 만나고,

"엄마~ 오빠 고생 오래 안하게 속히 데려가세요 " 매정하게 기도했다.

건강히 잘 지내시다가 혼수상태 사흘만에 영영 이별한, 엄마의 마지막을 닮고 싶은 내 소망도 들어있다.

영이별은 짧을수록 좋다. 

 

 

 

가정에서 쓰던 성물을 처리하는 곳이다.

성스러움에도 유효기간이 있나보다.

아마도 주인을 잃으면 성스러움의 상징들도 숨을 놓는가보다.

산 것들에게 공평한 것은 죽음이다. 그 때를 모른다는 것이 다행이자 불행이다.

이 지엄한 사실을 자주 잊는 데 문제가 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갈 세상, 다행이지만 슬프다. 아니 씁쓸하다.

이런 각성을 자주 일깨우려고 한다.

 

 

일욜,

며늘이 전화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야채 장을 봤는데 8만원이다.

시금치 한단에 만원이다. 난 시금치는 안 사고, 알배추, 양상치, 오이, 무우. 브로콜리... 별것도 없는데 참 물가가 오르긴 올랐다.

 

월욜,

아들 며늘이 장을 봐 왔다.

송편, 각종 전, 식혜... 잔뜩 사왔다. 송편을 빗지도 않으면서 솔잎까지 사왔다.

고기, 만두, 과일 등 손질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어머니 아버님이 안계시니, 애들이 하자는대로 한다. 또 날라리 ~

늦은 점심을 먹고

할 일도 없으니 가벼운 맘으로 새로 생겼다는 이매촌황토길을 걸었다.

 

 

 

 

 

 

 

 

 

카메라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하늘,

 

 

저녁을 먹으며 한 잔하고, '딴따라 박진영' 을 보면서 박진영은 60까지 춤을 춘대. 대단해.  이야기, 이야기...

차인표 너무 멋지게 살지 않니? 맞아요 어머니. ... 전날 밤에 싸웠어도 아침이면 신애라가 활짝 웃어준대 그래서 행복하대. 어머, 나도 그래야지. ... 뭐 이런 이야기. 며늘은 계속 맥주를 마시며.

대학갈 즈음에 집이 폭망했는데도 부모님 원망이 안됐어요. 장학금 타고 렛슨해서 돈 벌어 엄마를 갖다주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유니세프에 기부도 하고요. 물을 맘대로 마실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아들이 며늘을 '예술가 마인드'라고 한 게 떠오른다. 오빠는 금수저죠. 에이 아니지. 정서적으로요.

내가 어머니께 맨날 듣던 "넌 왜 그리 욕심이 없니" 였는데 나도 며늘에게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함께 음식은 만들지 않아도 먹고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하니 명절 기분이 난다.

1시경 잠자리로.

추석날,

딸네 식구가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 왔다. 온식구 모여 잠시 놀다가 아들네는 처가로 갔다.

저녁에는 시누이네 네 식구가 왔다. 사촌이 오랜만에 만나 명절 기분이 났다.

딸과 조카딸 둘이 고기, 장어를 구으니 난 아주 편했다.

모두 운전하느라 한 잔은 못하고...

추석 다음날

다른 때 같으면 친정 조카들이 대거 모이는 날인데 올해는 좀 더 있다가 날을 잡자고 했다.

더위에 취약한 남편이 영 기운을 못차린다. 이렇게 온다는 사람을 미루기도 처음이다.

이래저래 처음인 일들을 앞으로는 자주 맞을 게다.

아, 언니도 병이 났다고 더 있다가 오라고 했다.

이렇게 추석이 잘 지나갔다.

그 와중에 번개로 한 가지 일을 마쳤다.

제 11회 때보다 많이 저조하지만, 나름 재미있고 보람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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