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칠부능선 2021. 8. 26. 18:02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6개월 전에 나온 산문집이다. 

책머리말에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 " 

향년 78세, 마음이 절절히 다가온다. 

 

* 내가 다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웃음을 웃게 될 줄이야, 아마 외아들을 잃은 지 삼 년쯤 될 무렵이었을 것이다. 참척의 고통을 겪으면서 내가 앞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웃음을 웃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잃은 기둥에 비해 그 아이는 겨우 콩꼬투리만 하였으나 생명의 무게에 있어서는 동등했다. 생전 위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슬픔이 새로운 생명에 의해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57쪽)

 

* 장례를 치르고 온 딸들이 엄나가 듣건 말건 위로가 되라고 한 말이, 장례식장에 아들 친구들이 많이 와서 성대했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런 전해 듣자 내가 눈을 번쩍 뜨더니 그 친구들 뭣 좀 잘 먹여 보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드고 아이들은 아아,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엄마는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는 것이다. 

 삶이란 존엄한 건지, 치사한 건지 이 나이에도 잘 모르겠다. (93쪽)

 

*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 슬쩍 베끼지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숩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215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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