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패엽경 / 김도연

칠부능선 2021. 2. 25. 10:36

폐엽경이 무엇인지 몰랐다. 도서출판 북인의 페북 소개글을 보고 샀다.

- 꿈수집가의 허름한 침대

  딱 맞는 표현이다.

 

 

패엽경은 패다리수라는 활엽수의 잎에 불교의 가르침을 옮겨 적은 불경이라고 한다. 나뭇잎에 옮겨 적은 불경이라... . 두껍고 무거운 불경이 아니라 한 장의 나뭇잎에 적혀 있는 불경을 떠올리자 왠지 근사했다. 내 책의 제목으로 쓰고 싶다는 유혹을 버릴 수 없었는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어찌 나의 잡스러운 글에 불경을 올려놓는단 말인가.

하지만 유혹은 강렬해서 2007년에 발간한 첫 산문집 눈 이야기 속에 소제목으로 '패엽경'을 들여놓았다. 그 내용은 당연히 불경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주워들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는데 언제가부터 내가 휴대폰의 자판을 눌러서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나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니었다.  ...... 

지난 십여 년 동안 소설가라는 집을 지고 이 세상을 걸어가다가 문득 부조리한 현실, 부조리한 꿈이 떠오를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뭇잎 위에 쓴 짧은 글들이다. 

이러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불경을 옮겨 적은 패엽경을 산문집 제목으로 가져왔다는 책임에서 모두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1월 네팔에 여행갔다가 모셔온 타라보살의 진언을 여기에 한 자 한 자 옮겨 본다. 얼마 전 달라이 라마는 관음보살의 눈물에서 태어났다는 타라보살의 진언을 반복해 음송하면 코로나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며 병의 확산을 완화하고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하였다.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쏘와하 om tare tutare turw svaha

 

- '작가의 말' 중에서 (P 259)

 

지금 이 진언을 믿고 싶은 강력한 마음에서 길게 옮겨본다. 

 

 

 

* 약사여래철불을 만났다.

  약을 얻고 싶었다.

  오월의 햇볕엔 살의가 가득하여

  철사로 입술을 바느질해야만 건너갈 수 있다.

  뜨거운 철불을 업고 이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p 141)

 

 

* 산을 내려오다가 팔 하나를 떼어주고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왔다. 다리 하나를 떼어주고 목련 가지 하나를 꺾어왔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 허벅지 살점을 잘라서 주고 개나리 가지를 꺾어왔다.

술에 취해 이틀을 지나니 생강나무 가지에서 꽃이 피었다. 알싸한 꽃 냄새가 진동한다. 목이 잘린 부처가 좋아했다.

눈을 뜨니 마가리 극장 에선 동사서독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이런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건 기억력 때문이다. 잊으면 모든 게 편한데. 기억과 망각을 마음먹은대로 할 수만 있다면 누가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취생몽사란 술을 구하려 저 사막으로 가야겠다. (p 204)

 

 

* 열반한 스님처럼 재가 될 깜냥은 못 되니 여행이라도 가야겠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 설악산 오현 스님 열반송  (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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