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헤르츠티어

칠부능선 2018. 6. 16. 21:32

 

 

 

   

     강건모 편집자,

     반듯하며 겸손한 언행이 믿음직스러웠다. 그가 찍은 사진은 오래 전 내 글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만나지 않아도 왠지 든든한,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왔다.

     남의 책을 만들던 그가 그의 사진과 글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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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이미지 사이에서 존재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이따금 바람을 음표 삼아 작곡을 하고 영상을 찍는다. ---

     무심한 일상에 반격하고 싶어 사진을 줍고, 낯모르는 당신의 곁을 자주 기웃거린다."

      - 헤르츠티어 강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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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진의 분위기와 깊이가 범상치 않음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의 글이

   가슴을 찌르르하게 하는 데 놀랐다. 

   가슴에 많은 슬픔과 상처를 꾹꾹 눌러넣고 맑은 표정을 짓는 순한 아이의 얼굴이 겹쳐진다.

 

 

    '투명한 울음'

    그는 울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어느 날 한번 울어보고 싶었다

    마트에서 양파을 사 왔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앉아서 껍질을 갔다.

    양파 하나를 반쯤 깠을 때

    슬며시 눈에 문질러보았다.

    그러게 몇 번 갖다 대자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날 밤 오랫동안 숨어 있던

    그의 눈물길이 드러났다.

    눈물은 울음의 마중물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흐트낌을 불러내는 데

    성공하자 겉잡을 수 없었다.

    울었다는 기쁨에 겨워 그는 더욱 세차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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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는 남자는 아름답다. 그는 어느새 늠름한 남자가 되었다.

   실컷 울어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후련하고 맑아지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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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일생'

   중산간 흐릿한 저녁

   바람이 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갔다

   아뿔사! 그의 일생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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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을 찍겠다고 중산간에서 생을 마친 한 남자를 떠올리며 나는 가슴이 철렁, 했다.

   여백 사이로 사진의 배면을 기웃거리며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가슴을 열어 거풍을 한다.

 

 

 

이리도 겸손한, 진심이 전해지는,

 

 

이런 데 시선이 머무는 걸 헤아리니 웃음 뒤끝에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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