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능소화 / 이원규

칠부능선 2009. 4. 24. 21:17

 

 

  능소화

 

  -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 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란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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