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가을 저녁 / 이면우

칠부능선 2009. 4. 11. 19:32

 

 

  가을 저녁 

   - 이면우

 

 

   퇴근길 버스정류장 가는 길

   뒹구는 후박나무 잎새에 가만히 발 겹쳐보네

  구두보다 길고 내 쪽배처럼 생긴 누런 잎

  한 발로 딛고 남몰래 휘청거리네

 

  그렇지, 물 위에 닫는 첫발은 늘 마음 먼저 출렁이지

  그때 이맘때 이른 저녁 멀고 빈방에 불 켜두고

  만삭인 아내 쪽배에 태워 노을 속으로 힘껏 저어 가

  잠시 밝은 호수 가운데 두런두런 하노라면

  물결이 쪽배를 오두막 가까이 되돌려주었지

 

  그 쪽배 지금 호수 바닥에서 혼자 서늘하겠네

  그때 우리 노 놓고 무릎 맞대 무슨 말 주고받았던가

  하나도 기억 못하네 가을 저녁, 버스는 더디 오고

  호수 쪽 하늘에 자꾸 눈길 빼았기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부석사 / 정호승  (0) 2009.04.17
배나무의 치매 / 박라연  (0) 2009.04.17
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0) 2009.04.11
목련 / 안도현  (0) 2009.04.11
지평선 / 김혜순  (0) 2008.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