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두 개의 이름

칠부능선 2007. 1. 20. 19:27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모습이 가장 잘 담겨있는 책표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문학동네판 국내 책표지



젊은 날의 진 세버그


슬픔이여, 안녕
조경란 (소설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아름다운 소설을 쓴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에 관해 얼마전 글을 쓸 일이 있었습니다. 로맹 가리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뒤지다가 그의 두번째 아내가 그 유명한 장 뤽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했던 여배우 진 세버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제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이 나이 차가 24년이나 나는 부부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 깊은 우울증을 앓았다는것입니다.

우울증은 바로 '상실감'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우선 로맹 가리에 관한 약간의 소개가 필요할 것 같군요. 로맹 가리는 《하늘의 뿌리》라는 소설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상을 수상했고, 19년 뒤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 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수여하지 않는다는 콩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해 프랑스 문단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작가입니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은 1980년 12월 2일, 로맹가리가 자살한 이후 발견된 유서를 통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왜 두 개의 이름이 필요했던 걸까요.

60세가 된 로맹 가리는 이미 완성된 틀 속에서 그저 안주하기만 하면 되는 삶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첫 소설에대한 향수,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으며, '새로 시작하는것, 다시 사는 것, 다른 존재로 사는 것'에 큰 유혹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진 세버그와 헤어진 이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각기 다른 두 작가의 역할을 해 왔던 것입니다.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로맹 가리는 영화감독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합니다. 그는 거기서 스물한 살의 신인 여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첫눈에 반합니다. 영화를 찍고 난 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진 세버그와 함께 파리로 돌아온 로맹 가리는, 16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 온 일곱살 연상의 아내와 이혼했습니다. 진 세버그 또한 영화배우인 남편 프랑소와 모레이와 결별했습니다.

진 세버그는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현대 여성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전 영화들에서 카메라가 여배우를 바라보던 시각과 달리 '여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여배우는 머리가 나쁘다'는 선입관을 깨고 당시 주류였던 백인사회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던 흑인들의 인권과 권력 신장을 돕는 진보적인 일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FBI(미연방수사국)에 존 레넌, 제인 폰다 등과 함께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혔습니다. 결국 진 세버그는 계속되는 FBI의 공작과 언론의 매도 때문에 스크린보다는 법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8년을 함께 살고 오랫동안 별거했습니다. 별거중인 진 세버그가 임신하자 로맹 가리는 자신의 아이는 아니지만 법률적인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화해했습니다. 얼마 뒤 진 세버그는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 딸 니나를 출산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틀 만에 죽었고 그녀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로맹 가리와 이혼하고 일 년이 지나 진 세버그의 시체가 실종 열흘 만에 그녀의 자동차 뒷자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과음 후 치사량의 약물 복용이었고 당시 그녀 나이 41세였습니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디에고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진 세버그가 흑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중상모략하여 그녀를 정신병으로 몰고 간 FBI를 고발했습니다.

시골 약국집 딸 진 세버그의 죽음은 결국, 20세기에 '아름다움에 재능까지 겸비한 의식 있는 여성'이 주류사회에서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 준 비극적인 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진 세버그가 죽고 일 년 뒤, 로맹 가리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나이 66세였습니다. 훗날 로맹 가리의 전기를 쓴 도미니크 보나의 말에 의하면 그는 진 세버그의 자살에 크게 상심했다고 합니다.

생전에 로맹 가리가 끔찍이 사랑했던 디에고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만들 것도, 말할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내가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나를 보살폈다. 나는 작년에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로맹 가리의 짤막한 유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에게 우울증은 결국 자살에 이르는 병이라는 말이 맞는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경우 '사랑은, 비극의 빛나고 고통스러운 필연성을 충족시키는 사건이어야만 한다.'라는 말은 정말 사실일까요?

《슬픔이여, 안녕》은 프랑스 작가 사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젊은 날의 진 세버그가 출연했던 영화 제목이랍니다.

-좋은 생각 2003년 6월호





▲ 페루 음악 El Amor Y la Libertad (사랑과 자유) - K`Jarkas 
듣습니다 ♬

 

*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이런 확실한 경지가 있기는 할까.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 그저 무언가 강렬한 욕구가 저 깊은 곳에서 

   자라고 있지않을까 막연히 느끼고 있을 뿐이다.

   확실한 건...

   아직은 쫌 더 살아야 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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