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주관적 산문 쓰기 / 석현수

칠부능선 2022. 1. 22. 14:16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 수필을 쓰면서 치열하게 탐구한 기록이다.

 많고 많은 수필이론에 대한 의구심과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흥미로운 수필 이론을 알려준다. 언제 읽어도 절창인 윤오영의 수필로 쓴 수필이론 - '양잠설'과 '곶감과 수필'도 있다. 거의 외우다시피한 운정의 수필론도 반갑다. 

 에세이와 수필의 원류를 찾아 소개한다. 몽테뉴의 에세이와 베이컨의 에세이를 주제별로 비교 분석뿐아니라 원문도 소개한다. 몽테뉴 이전의 플라톤, 키케로, 세네카, 플로타르코스를 에세이의 선구자로 보고 몽테뉴 이후는 찰스 램, 버트란트 러셀, 그들의 글도 소개한다.

 에세이와 수필 사이의 고민도 상당하다. 한국수필의 전성시대를 풍미한 김진섭, 이양하, 안병욱의 글도 소개한다. 

 10년 동안 쓴, 시집, 번역서, 수필집에 이번 평론집까지 14권이다. 종횡무진 내달린 이 열정에 깊이 고개를 숙인다. 

 

 

* 고려 시대의 명문장가 이규보 선생은 그의 글쓰기 지도에서 옛사람들의 말을 너무 많이 인용하지 말기를 권고한다. 그런 글은 문장 속에서 송장 냄새가 난다고 혹평을 했다. 자기 얼굴을 보이라는 충고다. 독자는 저자의 손맛을 보기보다는 민낯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적어도 수필에서만큼은 글이 곧 글쓴이의 얼굴이 되어야 하기에 성형으로 아름다워진 것들보다는 정직한 자연산 글들이 절실하다. (28쪽)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글쓰기도 변한다. 마치 적자생존의 길을 찾아가는 종種의 진화라고나 할까, 문장의 진화라고 해야 할까, 때로는 시대적 상황 논리 때문이기도 하고, 글쓴이의 취향이 달라서이기도 하며, 일면 독자의 요구에도 순응해야 하는 문학 활동이어서 그렇다. 그렇다해도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글의 중심을 관통하는 '자신 그리기'다. 외형은 늘리거나 다이어트를 통해 변모할 수 있지만 글을 관통하는 중심은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210쪽)

 

* 노인들만 점령하고 있는 영변 약산에도 봄은 올 것인가? 심심산천에 붙은 불은 기성세대들만의 불놀이가 되어도 좋은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 젊은이의 재능이 묻힌 문학 언덕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한 날이 있을지 스스로에 물어 보고 싶다. (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