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인도방랑 / 후지와라 신야

칠부능선 2022. 1. 26. 21:06

   1944년 일본 후쿠오카 산 후지와라 신야가 25세에 인도에서 3년간 머문 기록이다. 

  내가 처음 인도에 간 게 2006년이니까 한참의 시차가 있다. 그럼에도 사진으로 만난 그곳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이 책을 읽으니 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다녀왔지만 '관광'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두 번째, 2013년 인문학기행으로 간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속살이란 것이 본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가까이서 바라본 풍경이 아득하면서도 찌릿하다. 

 

 

* 인도에 오래 있다 보면 점점 벌레처럼 되어갑니다. 인력이 강한 땅 같아요. 인력은 지구 위 어디나 똑같겠지만 땅이 끌어당기는 힘 같은 게 있어요. 땅의 힘 때문에 기진맥진해가는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티베트에 가면 하늘이 확 잡아당긴달지, 문득 고개를 들면 하늘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아요. 티베트에서는 위로 끌어당기는 반대의 인력이 있습니다. 양 극단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인도에서 티베트에 가면 물방개처럼 늪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른 듯한, 두 개의 영역을 날아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인도나 티베트에 있을 때는 벌레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일본에 돌아와서 내가 벌레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62쪽)

 

* 인도인은 '나마스떼(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라는 말을 멀리 있는 사람에게 건넬 때는 '나마스까르'라고 한다. '짤로 짤로 (가자 가자, 비켜 비켜)'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짤리에'라고 한다. 둘 다 뒷말이 더 아름답다.  

 힌디어는 대지 위로 울려 퍼질 때 비로소 그 말이 가진 아름다운 울림이 발휘되는 듯하다. 

 아스마산(화장터)라는 말도 그런 아름다운 울림을 갖고 있다. 

 나는 세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갠지스 강가에 앉아 "아스마산" 하고 두세 번 되뇌어보았다. … 마지막에는 큰 소리로.

 (189쪽) 

 

* 희한하게도 인도에서는 변사한 사람(질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죽은 사람)과 어린아이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고 강에 떠내려 보낸다. "변사한 사람과 어린아이는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으니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지요." 이 화장터에서 사무 보는 남자의 말이다. 그러고 보면 화장되는 자의 유족은 장례를 치르면서 그리 애통해하지 않는다. 수장되는 자의 유족이 종종 미친 듯이 울부짖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199쪽)

 

* 혼란의 도시 콜카타의 후글리 강에 걸린 거대한 철교, 그 다리 밑에 갈 곳과 먹을 것이 아쉬운 사람들의 악취가 진동을 하고 ... 그러나 그들에게 이곳은 비와 이슬만은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1월 어느 겨울날, 동틀 무렵 나는 그곳에서 사산死産을 보았다. 

 그것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더러운 홑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조용히 새벽 추위를 견디며 잠든 사람의 수는 백 명을 넘고, 거대한 다리 밑의 어스레한 공동空洞은 무서웠다. 

.....  (직시할 수 없는 광경을 펼쳐보인다.)

 아침의 부산함이 슬그머니 다리 밑까지 찾아들 즈음, 여자는 혼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아비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을 빠져나가 '강'으로 향했다. 아비의 양손에는 새로 장만한 새하얀 천에 싸인 아기 시신이 있었다. 새하얀 보퉁이는 추레한 아비의 모습에서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여는 작은짐 보퉁이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로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큰 소리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말하면서 울었다.  .....

 그리고 강가에 도착했을 때 그의 울음과 외침은 끝이 났다. 

  (253쪽)

 

 * 겁 없이 말하자면 지평선을 보는 것, 그것은 힌두교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이나 바위를 집어 들어보는 것, 이것도 힌두교다. 달의 궤적을 그것이 스러질 때까지 눈으로 좇는 것, 이것도 힌두교다.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 이것도 힌두교다. 늪으로 내려가 몸에 진흙을 덕지덕지 바르는 것, 이것도 힌두교다. 코브라머리에 입맞춤하는 것, 이것도 힌두교다. 요기처럼 물구나무서기를 자신이 늘 발을 아래로 향하고 땅 위에 서 있는 것만큼 해보는 것도 힌두교다. 강물이 흐르는 듯 언제나 움직이는 것, 즉 여행, 이것도 힌두교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나무 아래 부처처럼, 이것도 힌두교다. 

(261쪽)

 

 

* 『인도방랑』은 그 열에 들떴던 내 젊은 날의 부끄러운 첫 기록이다. 이번에 나는 몇 년 만에 다시 이 책을 통독했다. 지금 읽어보니 치졸한 대목도 꽤 눈에 띄어 손을 좀 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것은 내 젊은 시절의 언어이지 지금의 내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새삼 깨달은 것은, 이 책의 솔직함이 근대화되고 관리화 된 일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힘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 십 년간의 일본의 상활 진화와 더불어 한층 더 명확한 시점을 부여받고 있다는 것이다.  - 후지와라 산야

(357쪽)

 

 

 

 

                                 벌거벗은 몸에 칠을 한 괴이한 모습의 사두들

 

 

 

    가트에서 흔하게 보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