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말의 품격 / 이기주

칠부능선 2021. 3. 6. 09:54

 이기주의 전작에 비해 감성 밀도는 떨어지지만, 말의 엄중함을 자분자분 일깨운다. 

'말은 나름의 귀소 본능을 지닌다' 내가 한 말이 내게 돌아와 박힌다는 말이다. 그럼, 그럼. 

'둔감력'이라는 대목에서 눈이 뜨였다. 둔감도 힘이 된다는 말에 마음이 놓인다. 

2017년 5월 초판 발행, 2021년 1월에 98쇄를 찍었다.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다. 

내가 하는 말에 품격을 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독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말의 품격은 인품에서 나온다. 하루 아침에 바뀌는 일은 아니다. 다 알고 인정하는 사항이지만 자주 잊고 산다. 

 

 

*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에 참관하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했다. .... 

거악巨惡을 창안하는 것은 히틀러 같은 악인이지만, 거악과 손을 잡거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인지 모른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P46)

 

*** 둔감력은 좌절감을 극복하는 마음의 근력 또는 힘을 의미하는 '회복 탄력성 resilience' 같은 단어와 어감이 묘하게 겹쳐진다.

 타인의 말에 쉽게 낙담하지 않고 가벼운 질책에 좌절하지 않으며 자신이 고수하는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힘,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바로 둔감력이다. (P108) 

 

* 제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 사회』라는 책을 통해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21세기를 지배하는 질병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환이다"라고 말했다.

 난 그의 주장을 빌려, 작금의 우리 사회를 '지적指摘 과잉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불평과 지적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듯하다. 쓴소리와 하나가 되어 몰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경우도 있다.  .....

 착한 독설, 건설적인 지적을 하려면 나름의 내공이 필요하다. 사안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통찰은 물론이고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말 속에 배어 있어야 한다. 

 말 자체는 차갑더라도, 말하는 순간 가슴의 온도만큼은 따뜻해야 한다. (P196)   

 

* 옛말에 "대언大言은 담담하다"고 했다. '담담'은 물의 흐름 따위가 그윽하고 평온한 상태를 나타낸다. 힘 있고 웅장한 것을 가리킨다. 옳다. 큰 말은 분명 힘이 있다. 반면 소언小言은 수다스럽다. 가볍고 약하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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