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글의 품격 / 이기주

칠부능선 2021. 3. 8. 11:46

* 말을 아껴 글을 쓴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해 쓴다.

엿듣고 엿본 것을 기록하기 좋아한다. 

책과 사람을 평가하기 보다 음미한다.

타인의 세계를 존중할수록

내 세계도 깊어진다고 믿기에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담담히 꽃을 올려놓는다.

- 이기주

 

 

앞 날개의 작가소개가 맘에 든다. '말을 아껴 글을 쓴다.' '책과 사람을 음미한다.' 

기자 출신인 이기주 작가의 글쓰기를 넘겨보며 쓰기보다 먼저 행해야 하는 게 바라보기, 관찰하기, 음미하기, 느끼기다. 

 

 

*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에선 "명의名醫가 되려면 명화名畫를 감상해야 한다"는 말이 회자한다. 이 대학의 어윈 브레이버먼 교수는 미술 교육을 받은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환자를 진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그림 감상수업을 통해 관찰력이 높아지면서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능력도 향상됐다는 설명이다. 

글쓰기에서도 관찰의 과정은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주변 사물과 현상을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일수록 일상에서 글감을 수월하게 건져 올린다.  (p 62)

 

* 난 집필을 마무리하기 전에 반드시 어머니께 원고를 보여드린다.

일종의 통과 의례인 셈이데, 어머니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밑줄을 그어서 다시 내게 원고를 건네주면 난 해당 부분을 여러 번 읽어가며 쉽고 명확한 문장으로 다듬는다. 입에 착착 붙은 느낌이 들 때까지 표현을 고치고 또 고친다.

어머니의 독해력을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다. 어머니가 술술 읽을 수 있다면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의 품격은 문장의 '깊이'뿐 아니라 문장의 '개방성'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p 91)

 

*'동양화의 이단아'로 불리는 김호득 수묵화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연륜이 쌓일수록 여백을 그리는 데 힘을 쏟게 된다고 말했다. 

"난 공기를 그리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복잡한 그림을 그리려고 애썼지만, 이젠 여백을 많이 남기면서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고수의 동작은 단순해야 해요. 솜씨를 죽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입니다. "  (p 179)

 

* 김찬호 사회학자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풍경을 들여다본『모멸감』이라는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선플보다 악풀이 네 배가량 많이 달린다. 일본은 그 반대한 선플이 악플의 네 배 정도 된다.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는 어떨까, 놀라지 마시라. 선플이 악플보다 무려 아홉 배나 많다. 

.....

 조금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악플의 뿌리에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흔히들 한국인의 고유한 고질병으로 '화병火病'을 꼽는다. 한국인의 하는 쉽게 풀리는 법이 없다. 마음속 한구석에 한의 형태로 남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간다. (p 219)

 

*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어머니의 사랑을 닮았으면 좋겠다.

내 손끝에서 돋아나는 문장이

어둠을 가로질러 빛을 향해 날아가는

새가 되었으면 한다.

그 새들이 누군가의 삶을

밝은 쪽으로 안내하기를 바란다. (p 250)

 

 

이런 지향점을 가졌기에 그의 글이 따뜻했던 거다. 

예민하고 민감한 사항을 날카롭지 않게 궁굴리는 어짐이 있다. 모두에게 위안을 줄 수 있겠다. 

그러니 많이 팔리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