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굴거리며 <마르케스의 서제에서>를 읽었다.
탕누어는 '직업 독자'를 자처하는 타이완의 다독가다. 마르케스의 <미로 속의 장군>을 축으로 삼고 보르헤스, 칼비노, 나보코프, 벤야민,
레비스트로스.체호프. 밀란 쿤데라... 치열한 작가들을 사이사이에 세워 풀어낸 <열독 이야기> 다. - 원서의 제목
"에이, 젠장! 내가 어떻게 하면 이 미궁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2000킬로미터나 되는 원정을 하며 남미를 해방시킨 장군 시몬 볼리바르가 마지막 한 말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마지막 말 한마디에서 <미로 속의 장군> 제목을 취했다. 그 내용은 마그달레나 강을 따라 이루어진 14일간의
마지막 죽음의 여정이다.
몇백 년 동안 볼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스페인을 철저히 내쫓고 거대한 통일 남미 국가를 세우려 했던 볼리바르는
남미 전체를 장악한 적도 있지만, 마흔일곱 해밖에 살지 못했다.
뇌를 지치게 할 수있는 이 책은 옮긴이의 말이 걸작이다. 탕누어의 책을 번역하는 일은 고형이란다.
그가 지금까지 번역한 100권 남짓 되는 책들 가운데 가장 작업하기 힘들었지만 가장 황홀하고 배울 것이 많은 책이었다고
단언한다. 배우려는 사람은 줄어들고 가르치려는 사람만 많아지는 이 이상한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심지心智의 영역이다.'
*사유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불을 땔 때 장작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불을 때는 데 장작이 필요하듯이 생각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두 시간을 태울 수 있는 장작과 3분밖에 타지 못하는 성냥개비는
당연히 같지 않다. 사유의 재료를 공급하는 곳은 미리 저장해두었던 기억이다. ....
플라톤은 인류 사유의 역사에서 가장 열광적이고 철저한 기억의 옹호자다.
그가 꾸며낸 이집트의 우언으로 <파이드로스 >에 문자를 만든 신 테우스에게 말했다.
"당신의 이번 방명(문자를 만드는 것)은 매우고 익히는 사람들의 건망증을 유발할 뿐입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기억력에 의존
하기보다는 기록된 문자만 믿고 스스로 기억하는 데는 시간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
얼핏 보기엔 격렬하게 문자와 서적을 반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기억은 경험과 실천에서 비롯되며, 그 가운데 가장 귀중하고 놀랍고 무서운 것이 뼛속 깊이 새겨져 혼란스러운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보존된다. 기억은 시각적 형상에 그치지 않고 소리와 냄새, 맛, 촉감, 환각과 꿈 등 모든 감각을 포함한다.
* 밀란 쿤데라가 동유럽과 소련 세력의 해체와 망명생활의 종식에 따른 어색한 처지 등에 관해 쓴 소설 <무지>에
"미래에 관해 모든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인간이 정말 이 순간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까? 정말로 현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 인간의 능력으로 현재를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미래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현재의 의미를 이해릴 수 있단 말인가? 현재가
우리를 어떻게 현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단정하여 말할 수 있단 말인다? 이 현재가 찬동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의심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증오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대목을 무척 좋아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분노마저도 마음에 든다.
나는 이 많은 물음표를 바라보며 지금 일본과의 상황을 생각했다.
나라의 위기라고 이쪽 저쪽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삿대질을 하는데, 나는 그 삿대질을 바라본다.
상대를 찌르는 건 둘이고 자신을 찌르는 건 셋이다.
오래 전, 미당이 그랬단다.
"정말 해방이 될지 몰랐다"고 ... 대작가의 '친일의 변'치고는 궁하지 않은가. 아니 솔직한 건가?
등에서 땀이 흐른다. 조금 후에 물세례를 하리라.
뇌에 과부화가 느껴져서... 445쪽 이후의 부록은 아껴두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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