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순백에 홀리다 - 단평 (권대근)

칠부능선 2018. 11. 21. 18:37

           특집: 색으로 말한다

 

순백에 홀리다

노정숙

 

 

산토리니, 그곳에 닿기 위해 이틀이 걸렸다. 로마공항에서 아테나로, 아테네에서 산토리니 행으로 갈아탔다. 그리스 공항은 옛 김포국제공항을 닮아서 편안했다.

숙소는 피라마을 중심에 잡았다. 아담한 건물이 앞에서 보면 2층인데 내부는 5층이다. 이곳은 거의 절벽 위에 그대로 집을 짓는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와 작은 풀이 있고, 담과 벽, 복도가 온통 흰빛이니 산뜻하다.

특별히 전망이 좋다는 식당을 찾아 언덕을 오른다. 눈부신 집들과 상점, 카페와 교회가 모두 흰색인데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식탁에 앉으니, 구레나룻이 짙은 청년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귀에 익은 팝송을 들으며 해산물 요리와 화이트 와인으로 한껏 마음이 부푼다.

산토리니는 하나였던 섬이 화산 폭발로 4개로 나뉘어졌다. 다음날 해적선 모양을 낸 배를 타고 섬들을 둘러보았다. 화산섬 네아 카메니에 내렸다. 화산재를 밟으며 완만한 언덕을 오르니 분화구에서 유황이 끓어 하얀 수증기가 보인다. 화산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죽은 듯 조용하게. 황량한 화산섬에 엎드려 오종종 피어있는 꽃은 바람과 볕에 빛이 바랬다.

배에서 내리지 않고 본, 작은 섬의 해변에 하얀 교회가 있다. 둥근 지붕이 앙증스럽다. 교회 앞 바다 속에 온천이 있다. 붉은 기운 위로 김이 피어오른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수영을 한다. 비키니를 입고 풍덩풍덩 바다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침만 삼켰다. 바닷물이 그냥 몸을 띄워줄 텐데 용기가 모자랐다. 여행자의 지나친 염려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크루즈는 마지막으로 산토리니의 제일 큰 섬, 일몰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아마을 해변에 내려준다. 동키라는 나귀를 타고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좁은 계단으로 언덕을 걸어서 올랐다. 동키도 힘이 드는지 몇 발자국마다 똥을 무더기로 쏟아놓는다. 헉헉대며 오르니 하얀 집들이 눈부시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비현실적이다.

이아마을에는 내가 기대했던 아틀란티스 서점이 있다. 어렵게 문을 연 서점은 계단을 내려가 반 지하에 있어서 실내가 밝지는 않았다. 천장에는 이 서점에서 자원봉사를 한 사람들의 이름이 원을 그리며 쓰여 있다. 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니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다. 서점 한편에 도네이션 박스가 있다. 돈이 아닌 사명감과 열정으로 이어가는 아틀란티스 서점, 이들의 순정한 마음에서도 하얀 빛을 느낀다.

이 서점에는『어린왕자』,『그리스인 조르바』,『노인과 바다』등의 초판본이 있고, 철학서적을 모아서 파는 철학의 탑이 있다. 잘 보이는 진열대에서 한강의 소설『흰』을 만나니 내 것인 듯 반가웠다. 하얀 바탕에 한글로 쓴 ‘흰’ 단정도 하다.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렵혀질 수 없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라는『흰』, 작가 한강의 말이 떠오른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나는 비로소 이곳 순백의 이면을 생각한다. 환하기만 한 하얀색이라고 느꼈던 이곳의 흰색은 더러워지면 계속 덧입혀야 한다. 어쩌면 이 하얀색은 우리가 알아내지 못할 정도의 빠른 주기로 생사生死를 오가는지도 모른다. 생명의 시작인 배내옷, 환희의 순간 웨딩드레스와 생의 마감에 입는 수의까지 인생의 절정은 모두 흰색과 함께한다.

멋진 일몰을 보기위해 낮부터 사람들이 높은 곳에 모여 있다. 해는 구름을 허리에 걸고 주변에 온갖 색을 입히며 에게 해 속으로 느리게 들어간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우아하게 퇴장한 해, 맞은 편 하늘에는 이미 하얀 얼굴의 달이 떠있다. 어디서건 높고 의연한 것은 외롭다.

화산섬인 산토리니의 민얼굴은 바다와 화산재다. 평평한 땅에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를 기르고 절벽에 집을 짓는다. 척박한 토양과 강렬한 태양에 포도나무는 허리를 세우지 못하고 바닥에서 제 둥치를 둥글게 말고 자란다. 절벽에 등을 댄 집들은 온통 흰색이다. 끝없이 파란 바다와 어울린다. 이곳에서 하얀색보다 뛰어난 색은 상상할 수 없다. 기꺼이 홀릴만한 순백이다.

순백의 티라, 그리스 사람들은 이곳을 티라라고 부른다. 바다를 정원 삼아 지은 풀 비치 호텔은 바라만 봐도 환상이다. 허니문 전용이라는 안내판에 멈칫했다. 호텔 옥상에서 웨딩촬영하는 모습이 화보의 장면 장면이다. 유럽 젊은이들의 로망이 산토리니의 허니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허니문을 보내면 평생 환상을 품고 살 수 있을까. 이들이 환상을 위해 치른 값을 길게 누리길 바란다.

생활인과 여행자로 시차를 두고 넘나든다. 생활인의 노역은 다양한 색을 지닌다. 푸르고 붉은 격랑의 감정과 애틋한 파스텔 톤 감상이 뒤엉키며, 때 없이 술렁이는 의문과 다짐으로 먹색이 되기도 한다. 여행자의 시간을 준비하며 편견 없는 시작을 다짐한다. 낯선 것들과의 만남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려 가슴을 연다. 여행자의 길에서 나는 비로소 흰색이 된다.

지중해의 작열하는 태양은 여행자에게는 경이롭지만 생활인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생활인은 흰색을 외벽에 칠해 열을 반사시켜 실내온도를 떨어뜨린다. 티라에서는 모든 건물을 흰색으로 칠하는 것을 법으로 정한 때가 있었고, 지금은 하얀 벽을 더럽게 방치하면 벌금을 부과한다. 티라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은 걸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린 피라마을의 상점들, 보석가게는 그림 보듯 지나치고 옷이나 장신구에 슬쩍슬쩍 눈길을 주다가 떠나기 전날 흰색 페도라를 샀다. 자주 쓸 것 같지는 않지만,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속이 시끄러울 때 살짝 머리 위에 올려보리라.

모든 색을 받아들이고 또 모든 색을 지워버릴 수 있는 흰색, 탄생과 환희와 죽음을 품고 있는 흰색, 어느 색과도 잘 어울리는 그 순백을 나는 우러른다.

 

<현대수필>2018 겨울호

 

 

 

 

 

 

 

 

형상적 체험의 변용과 결말의 지배적 정황

- 권대근

 

 

Ⅰ. 떠나기

 

  수필의 문학성은 형식이나 구조에서 나온다. 어떤 이론가는 수필 텍스트를 심층과 표층, 그리고 담론층이 유기적으로 생성하는 입체구조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본격수필의 메커니즘을 구축해주는 미적 배열의 핵심원리를 체험 -> 해석 -> 형상화로 이어지는 삼 단계 과정의 유기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중략)

 

 

Ⅱ. 터잡기

 

  수필쓰기의 기본은 나와 나를 위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세계란 사물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건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라고 하는 텍스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해석은 해석으로 끝나지 않는다. 설혹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그 해석된 내용이 구체적 형태를 갖추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직설적인 발화는 우리에게 별다른 감동을 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지로 묘사한 겨우,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보다 더욱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의 언술 양상은 이미지가 전달하는 미적 감각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된다. 노정숙의 「순백에 홀리다」수필부터 검점해 보자.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린 피라마을의 상점들, 보석가게는 그림 보듯 지나치고 옷이나 장신구에 슬쩍슬쩍 눈길을 주다가 떠나기 전날 흰색 페도라를 샀다.

자주 쓸 것 같지는 않지만, 머릿속이 복 잡하거나 속이 시끄러울 때 살짝 머리 위에 올려보리라. 모든 색을 받아들이고 또 모든 색을 지워 버릴 수 있는 흰색,

탄생과 환희와 죽음을 품고 있는 흰색, 어느 색과도 잘 어울리는 그 순백을 나 는 우러른다.

- 노정숙 「순백에 홀리다」의 결말

 

  이 수필은 작가가 그리스 산토리니 여행을 통해, 흰색에 홀리는 과정을 그린 색에 관한 테마수필이다.

색은 언어, 리듬과 함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질료 중 하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일몰이 아름답다는 이아마을에서 작가는

하얀집들의 흰색에 홀리기 시작한다. 흰색으로부터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마음을 얻고, 아틀란티스 서점에 도네이션하는 사람들의

'순정한' 마음에서 작가는 하얀 빛을 느낀다. 그녀가 마을에서 얻은 '순정'과 '순수'의 필링은 결말에 가서 흰색을 표상하는 '순백'으로

통합된다. 흰색에 끌리는 작가는 한강의 소설 『흰』을 만나고, 비로소 흰색의 이면을 생각함으로써 미적 사유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하얀색에서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찾아낸 것이야말로 이 수필을 감상하는 쾌미다.

"이곳에서 하얀색보다 뛰어난 색은 상상할 수 없다. 기꺼이 홀릴만한 순백이다." 그리하여 이 수필에서 흰색이미지는 단순히 장면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생활인과 여행자의 대비라는 지배적인 정황dominant ompression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문학적 성취의 결정적인 정황은 떠나기 전날 흰색 페도라를 산 정황은 미적 사유를 자극하는 멘트임이 틀림없다.

결미에 가서 작가는 흰색은 탄생과 환희와 죽음을 품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흰색에 생활과 여행을 두루 관통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형상화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 미적 묘사, 즉 형상화가 지배적인 인상과 정황을 통해 우리의 미적 인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생명의 배내옷, 환희의 순간 웨딩드레스와 생의 마감에 입는 수의까지 인생의 절정은 모두 흰색과 함께 한다’는

전개부 구체적 진술은 어느 색과도 잘 어울리는 흰색의 의미화로써 적격이다. 이런 미학적 에세이는 미적 인식과 관련하여

다른 일반 수필과 확연한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형상화는 서사문학에서 미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서사적 성격이 강한 수필에서는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주제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와 같은 지배적 인상화, 즉 형상화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하략)

 

<현대수필> 2019. 봄호 작품평 중에서 

 2019.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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