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헐벗음에 대하여 / 김선태

칠부능선 2010. 8. 2. 20:58

 

 

헐벗음에 대하여

김선태



  한밤중에 울어 잠을 설치게 하는 장닭을 잡아 없애라
는 아버지 성화로 겨울 아침 마당가에서 닭털을 뽑는다.
동생은 닭 모가지를 쥐고 나는 닭발을 밟고 닭털을 뽑는
다. 그냥 죽이기 싫어 먼저 닭털을 뽑는다. 닭털을 다 뽑
고 나니 닭 몸뚱이에 닭살이 돋는다. 닭 모가지를 누가
비틀거냐 실랑이하며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닭이 도망
간다. 알몸으로 오돌돌 떨던 닭이 쏜살같이 마당을 가로
지른다. 가로질러 마구간 아궁이 속으로 처박힌다. 연기
를 피워도 계속 불을 때도 뛰쳐나오지 않는다. 결국 구들
장까지 뜯어 끄집어내어 보니 이미 훈제 통닭이 다 되어
있다. 젠장, 아버지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신다. 단숨에
팍 모가지를 비틀기보다 하나씩 옷을 벗겨 추위에 떨게
하는 게 더 몹쓸 짓이여. 헐벗음이 차라리 죽기보다 몇갑
절 견디기 힘든 것이여 이놈들아, 알긋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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