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그에게 열광하다'

칠부능선 2007. 5. 20. 19:54

김서령이 윤택수를 두고 쓴 글이다.

"......

 그는 늘 실한 산문을 쓰고 싶어했다.

주어와 서술어가 따뜻하게 마주 보고 있는 산문, 비유와 윤색과 전고가 자제되어 있는 산문,

무심한 돌처럼 놓였어도 우뚝하고 우묵하여 우르릉우르릉 울리는 산문,

산문이란 이래야 한다는 모델을, 그 도달점을 윤택수에게서 배운다.

나의 희망은 카프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박경리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윤택수 만큼만 쓰고 싶다.

아니 어쩌면 윤택수가 카프카보다 더 진지하고 자기완성적인 글을 썼다고 나는 생각한다. "


 

 

 

*김서령이 열광한 윤택수의 글이다.

 

"4월 어느 날 나의 뒤에 그가 와서 앉았다.

4월 어느 날은 현기증이니 요절이니 형벌이니 하는 소년적이고 일상을 할퀴는 관념들에 마음이 쏠리는 시기였으므로 나는 그가 내 뒤에 와서 앉은소리를 들으면서 끈끈한 침을 삼켰다.

그는 귀족이었다.

수학과 과학에 강하고 대체로 과묵한 녀석. 귀족을 귀족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 4월에 알아버렸다.

그것은 지나치지 않는 말이었다.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말의 절대량은 물론 어세와 음량과 어휘력과 수사학에 두루 관계된다.

4월 어느 날 다가온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이 부셨고 열등감에 휩싸였고

끝내 불쾌한 자의식에 사로잡혔다. 눈부심이 빗선 이라면 열등감은 밑선이고 자의식은 수직선,

그 모든 것을 나는 냄새로써 획득했다.

냄새는 직각삼각형처럼 구체적이고 치명적이었다.

전나무와 그림자 길이와 그림자 끝과 전나무의 높이를 개산(槪算)하는 일을 지치지 않는 정열로 계속했다는 비트케슈타인, 때때로 그는 강풍으로 갸웃이 몸을 구부린 전나무의 높이를 계산하기도 했을 것이다... 보라 나는 말이 지나치다.

지나친 말은 지나친 냄새이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함이고 곧 천박함이다.

나는 말의 절대량이 많고 어세가 울퉁불퉁하고 음량이 고르지 못하여 끽끽거리고 날카롭고 짜랑짜랑한 어휘를 굳이 찾으려 하고 비유와 예증과 교란과 광채에 탐닉하면서 푸코적 고고학자인 척한다."

 

 

 

* 윤택수의 "지나치지 않은 말"에 어찌 열광하지 않겠는가.

 

  내게도 모델이 필요하다.

 

  출간 10일만에 2쇄를 찍은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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