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516

도래할 책 / 모리스 블랑쇼

꽤 오래 잡고 읽었다. '도래할 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모리스 블랑쇼, 그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상가'라고 불리는 것도 궁금했다. 그의 언어가 궁극적으로 우리의 학문적,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우리 삶에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 또 무슨 뜻일까. 많은 철학가와 작가의 작품을 흝으며, 두꺼운 책을 덮으면서도 환하게 느껴지는 건 없다. 어슴프레... 언어 너머, 문학 너머의 무엇이 우리를 이끌어 갈것이라는 것?  * 『수첩』에 붙은 부제 「주베르의 내면의 일기」는 우리를 헤매게 하긴 하지만 오해하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가장 깊은 내밀성이며, 이 내밀성에 대한 탐구이고 그곳으로 다다르기 위한 길이며, 결국에는 그것이 틀림없이 하나로 녹아들..

놀자, 책이랑 2021.11.13

보라색 고양이 / 조후미

읽던 책을 미루고 얼른 다 읽었다. 기대감을 충족했다. 재미있게 읽다가 감동을 덤으로 얻는 1+1 같은 수필 수필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순간부터 수필의 최대 강점인 ‘형식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녹여낸 수필을 쓰고 싶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오로지 수필만 사랑해 온 의리파 독자뿐만 아니라 수필은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외면했던 타 장르의 독자에게도 수필은 이렇게나 흥미진진한 글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재미있게 읽다가 감동을 덤으로 얻는 1+1 같은 수필을 쓰고 싶다. ... 언제쯤 이규보 같은 명문장가가 될 수 있을까? 천년 후에도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 묵직하게 향기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지위고하 격차 구분 없이 쉽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언제..

놀자, 책이랑 2021.11.12

땡감 설(說) / 조후미

땡감 설(說) 조후미 사내가 계집을 찾는 것은 세상 이치요 음양의 조화라. 사내와 계집 사이만큼 끈적이는 것이 하늘 아래 또 있을런가. 알고 보면 그도 그럴 것이. 그네들은 태생이 자궁이니 찐득찐득 끈적거리는 것이 당연지사 명약관화로다. 허나, 화접(花蝶)이 꿈을 꾸되 동상이몽이렷다. 계집은 마음이 동하는 사랑을 원하고 사내는 몸으로 사랑을 구하니, 계집을 찾는 사내의 욕심은 앞뒤 잴 것도 없이 아랫입이구나. 비극도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나온 곳이 같고 먹고 자란 것이 같으나 생각은 다르니 도무지 이해는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더란 말이냐. 계집 마음을 얻으려고 해구신에 비아그라 좋다는 약 모다 먹고 쇠구슬에 해바라기로 꽃 장식을 했것다. 허나 야동이란 야동 다 섭렵해도 알 수 없는 것이 계집의 마음이..

산문 - 필사 + 2021.11.12

지막리 고인돌 / 조후미

지막리 고인돌 조후미 엔날에는 전라남도 진도를 옥주沃州라고 했어라. 땅땡이가 겁나게 넙고 지름징께 그케 불렀다고 합디다. 요새도 뱃꾼보다 농사꾼이 더 많애라. 째깐 매한 섬이지라잉. 지도를 피고 진도 동쪽을 찬찬히 살피믄 첨찰산 끄터리에 지막리라는 마을이 걸쳐있어라. 뒷산에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응께 상당히 유서 깊은 동네것지라잉. 동네로 나댕기는 질 한피짝에는 찔쭉한 도팍이 서 있는디라 어르신들이 그 독을 슨돌이라고 부릅디다. 마을에 슨돌이 있다는 것이 뭔 뜻인지 아요? 그것은 엔날꼰날부터 거그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뜻이제라. 시방은 서울 같은 도시서 사람들이 오굴오굴 몰려 살지만 선사시대 때는 맹수들이 무사서 섬에서들 살았당께라. 섬에서 살다가 차근차근 육지로 퍼져나간 것이지라. 선사시대부터 사람..

산문 - 필사 + 2021.11.12

시간을 건너오는 기억 / 문혜영

원주의 문혜영 선생은 사진도 찍고 시도 쓰며 수필을 가르치는, 활동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보였다. 먼발치에서. 선정위원으로 합류하면서 가까이 보게 되었다. 세상에나~~ 난 이 책을 읽으며 계속 감탄하고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1부, 세월 2부, 사랑 원산에서 모도로, LST를 타고 거제도 피란민 수용소로.... 세 살때 아버지가 실종되고, 어머니와 네 자매의 생활상은 뭉클하다. 든든한 언니 둘과 동생, 아버지 기억이 없어도 아버지의 품성을 물려받은 네 자매는 아버지가 못 다 사신 생을 넉넉히 살아내고 있다. 선생님의 환한 얼굴의 연유가 이 끈끈한 사랑에 있었던 거다. 3부, 투병 감사와 사랑으로 통증을 꽃으로 피워냈다. *문학은 내가 만들어 가는 유일한 울음의 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글이 울음의..

놀자, 책이랑 2021.11.07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장명숙

지난 수욜 문선배님이 건네준 책이다. 출간 한 달만에 12쇄라니... 유튜브에서 봐서 익숙한 밀라논나, 장명숙 - 70세, (내 눈엔 할머니가 아니지만 스스로 할머니라는 걸 부각시킨다.) 할머니의 세련된 삶과 패션을 소개하는데 배울 게 많다.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에 패션 디자인 유학을 하고 왔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해외 명품을 런칭했고, 수많은 무용 공연의 무대의상 디자인을 했으며,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명예기사 작위를 받았다. 민간 외교의 역할도 잘 했다. 더우기 일흔 살에 인기 유튜버라는 건 대단하다. * 내가 좋아하는 고 피천득 시인은 이라는 책에서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간다'고 말했다. 나는 위대하진 않지만 내 시간의 주인은 바로 나여야 한다. (1..

놀자, 책이랑 2021.11.06

나의 음악 인생 90년 / 이영자

..... 여기에는 가슴 깊이 새겨진 나운영 선생의 철학이 지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기 때문이다. "음악은 시공을 초월해서 그 어떤 소재, 기법으로 표현하더라도 아름다움의 미학을 가장 깊은 고에 반석으로 두고, 살아있는 영혼의 소리을 담으라" 그러기에 감상자의 취향을 지향하기보다는 그들을 앞서 이끌고자 한다. "나는 여전히 지금의나로 음악을 만들며 청중과 함께 가기를 주저하며, 앞선 자리에서 시대성을 지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작곡가 이영자는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 글 송주호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에 갔다. 이영자 선생님은 연주 준비로 밤을 새우다가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한다. 다행히 다음날 퇴원한다지만 이 자리에 따님이 나와서 엄마의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지금 참으로 행복해서..

남천, 꽃피우다

우리집에 와서 분재의 본연을 잃어버리고 푸른 잎을 무성하게 올리더니 이제야 꽃을 피웠다. 많이 보던 조롱조롱한 흰꽃이 아니다. 시원스럽지는 않아도 꽃이 분명하다. 피어나기 위해 공들인 시간을 헤어리며 자주 눈맞춘다. 시끄럽던 속이 조용해진다. 말없는 것들의 위로에 귀 기울인다. 오늘도 피어날 일만 남았다. 나에게 빡세게 세뇌를 한다.

엄마한테~

속시끄러운 일이 있다. 엄마한테 왔다. 하늘은 높고 청량하다. 마음을 다스리는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꺼야한다. 이그~~ 을 집었다. 버릇이 나온다. 무엇이건 책으로 해결하려 하는... 홀로 실소~~ 84년생 마크 맨슨의 책이다. 다 아는 것을 콕 집어준다. 그래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웃음이 나는 건, 제목 보고 잡은 '나' 때문이다. 뻔한 답을, 당연한 답을 다 알고 있는데도 뒤척거리는 건 미련한 마음인가. 연민인가. 어쨌거나 다 지나갈 게다. 폭풍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더께진 바닷속은 한번 뒤집어줘야 맑아진다. "그래, 너 잘났다~" 엄마의 핀잔 소리가 쟁쟁 울린다. 조카가 다녀간 흔적이 있다. '다음에 올 때는 연락해~~ ' 톡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