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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 / 성현

500년 저 너머 사람 성현(1439~1504)의 글이다. 세종 연간에 태어나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세 임금을 차례로 모시며 높은 벼슬을 했다.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비평가, 탁원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용재총화』는 일곱 개의 장으로 먼저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람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역사책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의 일화 및 점잖고 근엄해 보이는 사대부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으며, 호기가 넘치는 영웅과 지사의 일화, 백성의 해학이 담긴 민담과 소화, 오싹하고도 가엾은 귀신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역사와 풍속 이야기를 담았다.' 역자의 소개는 거창하나 그야말로 문학적 장치 없는 옛날이야기다. 같은 글을 어찌 해..

놀자, 책이랑 2022.03.09

근본 없다는 말 / 김명기

근본 없다는 말 김명기 마당가 배롱나무 두 그루에 꽃이 한창이다 한 그루는 장날 뿌리째 사다 심었고 한 뼘쯤 더 자란 나무는 가지를 베어 꺾꽂이했다 뿌리째 심은 나무는 사방 고르게 가지를 뻗어 꽃 피우고 베어 심은 것은 뿌리내리며 가지를 뻗느라 멋대로 웃자랐다 그중 제일 먼저 뻗은 가지는 땅을 향해 자란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을 힘 다해 살았겠지 기댈 데가 없다는 건 외롭고 위태롭다 죽을 수가 없어 죽을 힘 다하는 생 뿌리가 얼마나 궁금했으면 아직도 땅을 향해 자라날까 무심코 내뱉는 근본 없다는 말에는 있는 힘 다해 뿌리내리며 허공을 밀어 올리는 수없는 꺾꽂이 같은 삶이 깊숙이 배어 있다

시 - 필사 2022.03.05

시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 이어령

시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이어령 시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운율은 출렁이는 파도에서 배우고 음조의 변화는 더 썰물과 밀물을 닮아야 한다. 작은 물방울의 진동이 파도가 되고 파도의 융기가 바다 전체의 해류가 되는 신비하고 무한한 연속성이여 시의 언어들을 여름바다처럼 늘 움직이게 하라 시인의 언어는 늪처럼 썩는 물이 아니다.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은 부패하지 않지만 늘 목마른 갈증의 물 때로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갈증을 겨디며 무거운 짐을 쉽게 나르는 짐승 시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시 - 필사 2022.03.05

시간과 속도

20대는 20킬로로 달리고, 60대는 60킬로로 달린다는 말은 맞다. 하루하루가 아닌, 한 주일 단위로 살고 있다. 한 주일이 뭉텅뭉텅 지나간다. 월욜, 자임네 부부와 자임 생일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우리동네 '취영루'에서 코스가 아닌 요리로만. 이렇게 주문하니 음식이 모두 맛있다. 스벅에 가서 커피까지. 옛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푸근하다. 같은 시간을 가까이서 건너온 사람들만의 공감대가 있다. 헤어지고 오는 길에 자동차 정기검사를 받고. 화욜, 자임과 둘이 번개팅. 모자를 샀다고 전해주러 왔다. 이매역에서 만나 또 서현역으로 가서 모밀국수와 만두로 점심을 먹고, 또 커피 후 탄천으로 걸어왔다. 덕분에 걷기까지. 수욜, 봄학기 첫 수업이다. 새 회원이 한 명 들어왔다. 14명 정원이니 대기자가 많다고 ..

김선우의 사물들 / 김선우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3시까지 읽었다. 잠이 오면 좋고, 잠이 오지 않아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니 좋다. 가끔 떡실신도 하니 걱정할 건 없다. 눈이 너무 아플때는 책 읽어주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눈 감고 있으면 어느새 잠들고 ... 오래 전, 내가 문단에 입문했을때 오선생님 따라서 간 명동 어딘가에서 '해외이주민을 위한' 공연에서 김선우 시인을 만났다. 문인과 가수의 콜라보다. 그때 해외에서 노동자들이 막 들어올 때였다. 고은 시인과 이야기 하면서 중간 중간에 가수 이은미가 노래를 했다. 그때 사회를 보던 까칠한 시인의 모습, 이은미의 품 너른 성품을 느꼈다. 대담은 아슬아슬 했고, 노래는 좋았다. 그래, 김선우 시인도 아주 젊을 때다. 이 책을 보니 그간 흐른 시간이 느껴진다. 민감함은 여전하지만 많이 ..

놀자, 책이랑 2022.03.05

사실들 / 필립 로스

부제 필립 로스의 이 자서전은 바로 전에 읽은 이전 작품이다. 작가의 일상은 소설의 모티브가 된다. 인생 편력이 곧 여성 편력이기도 하다. 그 특별한 인간관계에서 얻은 경험이 소설에 어떻게 펼쳐졌을지 그의 소설이 궁금해진다. 작가적 분신이기도 한 작품의 주인공 '주커먼'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하고 주커먼이 작가, 로스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친다. 2018년 5월 22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85세) *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건 허구적 자기 전설을 지어내느라 탈진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신경쇠약에 대한 자연스러운 치료적 반응인 것만도 아니며, 1981년에 일흔 일곱의 나이로 나에겐 여전히 불가해하게만 여겨지는 죽음을 맞이하신 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대한 일시적 처방이자, 삶의 종말이 면도할 때 보는 거울..

놀자, 책이랑 2022.03.01

일요일의 일

토욜 태경네가 왔다. 찹쌀떡 속에 딸기가 들어있다. 내 취향 저격이다. 완전 맛있다. 이런 새로운 조합이 필요하다. 글에서도. 일욜 10시부터 4시까지 워크숍이 있었는데 난 오후 프로그램만 참석했다. 아이들과 아점을 먹고~~ 3시간 다녀왔다. 이곳에서는 아마 내가 최고령인 듯, 그동안 일이 많았던 김성수 국장이 회장이 되고, 새 사무국장 류정애 님의 진행으로 화기애애, 일사천리~. 나는 조용히 내가 담당할 일만 즐겁게 하는 걸로. 즐겁게 할 수 있을때까지만.

아버지의 유산 / 필립 로스

미국의 명망 있는 모든 상을 휩쓴 작가, 필립 로스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기록한 글이다. 작가로서는 성공했으나 이혼하고 자녀도 없는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다. 뇌에 큰 종앙이 있고, 오른쪽 눈 시력이 거의 없고, 안면신경마비상태다. 그럼에도 정신은 누구보다 맑고 명석하기까지 하다. 총을 들고 유대인 노인을 노려 강도짓을 하는 흑인 소년에게 한 행동이며, 의사에게 자기 병에 질문하는 것이며, 똥을 싸고 한 행동이며... 오래 남을 장면이 많다. *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네 단어, 그전에는 평생 아버지에게 해본 적이 없는 네 단어를 내뱉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스웨터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세요." 그것은, 그 네 단어는 먹혔다. 나는 쉰다섯이고, 아버지는 여든..

놀자, 책이랑 2022.02.23

둔내 - 티하우스

10시에 우리집에서 4인 출발, 티하우스를 당일 다녀왔다. 다음씨가 운전하고 고기랑 술이랑 사갔는데, 혜민씨가 고구마 계란 굽고, 수육, 김치 모두 준비해 놓아서 거하게 먹고, 나는 과일과 장아찌 가져가서 곁들여 먹고~~ 왕복 3시간 30분, 4시간 정도 놀고~~ 어둡기 전에 집에 도착. 가뿐한 하루를 보내다. 횡성휴게소 화장실에서 이중섭을 만나다. 이중섭이 '소'를 그렸다고 횡성에서 대접?을 하는 거... ㅋㅋ 그런데 왜 화장실입구에? 화장실 입구에서 사진 찍는 것도 웃기고 티하우스는 여전하고~ 그리움 남기는 행복 충전소 - 티하우스 티하우스 새 식구가 늘었다. 얘들 둘이 어찌나 다정한지~~ 이것도 웃기고 젊은 둘이 설거지 하고 쥔장 옷을 덧입고 눈발이 내리는 뒷산으로 뒷 계곡에 저 추억 돋는 테이블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71년생 김지수가 88세 이어령 선생님을 매주 화요일 찾아가서 나눈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이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다. 더불어 고백건대 내가 인터뷰어로서 꿀 수 있었던 가장 달콤한 꿈이었다.' PS. 선생님은 은유가 가득한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라셨지만,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푼다. (감사하게도 그가 맹렬하게 죽음을 말할수록 죽음이 그를 비껴간다고 나는 느꼈다.) ' 2005년, 현대수필 특강에 초대해서 가까이서 본 일이 떠오른다. 그 반듯한 용모와 카랑카랑한 음성이 선하다.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우리 엄마 말도 떠오르고. 선생님은 암에 걸렸는데 전이된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있다. 암, cancer는 라틴 말..

놀자, 책이랑 2022.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