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천사의 눈물 / 노정숙

칠부능선 2025. 5. 26. 17:16

천사의 눈물

노정숙

 

지난 겨울 초 홍천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했다. 단정한 마당 향나무 아래 연두빛 풀이 소복하다. 이름이 ‘천사의 눈물’이란다. 그냥 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름을 알고 나니 특별한 마음이 솟는다. 자세히 보니 눈물 같은 망울이 오종종 달려있다. 이름에 반해서 여리디여린 풀을 작은 포트에 담아왔다. 빈 화분에 옮겨심고, 제 있던 자리를 생각해서 베란다에 두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추운 겨울이다. 햇볕이 없는 밤에는 거실문을 열어놓고 온기를 나눴다.

오래전, 어머니는 한여름에 에어컨을 켜면 베란다에 있는 화분을 거실로 들여놓으셨다. 꽃들도 얼마나 더울까 걱정하셨다. 자식에 대해서도 기대가 커서 걱정을 달고 사셨다. 바람이 과한 어머니께 흡족한 건 없었다. 돌아보니 어머니의 걱정이 기도이며 그 덕으로 이만큼 평안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걱정보다 무작정 긍정 쪽으로 밀고 나간다. 딸은 제 무릎의 흉터를 보며 너무 험하게 키웠다고 하고, 노래를 좋아하는 아들은 왜 피아노를 끝까지 가르치지 않았냐고 한다. 내 나름 시류에 따라 여러 학원을 보냈지만 싫다고 하면 바로 그만두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즐겁게 지내는 걸 최고로 여긴 게 실책이었는지…. 어쨌거나 아이들도 어른이 되었고 이제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아들딸이 생각은 자유롭고 몸은 가벼우며 마음이 따듯한 어른이 되기를. 자신을 중히 여기고 벗을 귀히 여기며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길 빈다. 어미의 기도에 천사의 눈물을 얹어본다. 천사는 상처투성이 인간을 향한 연민으로 눈물을 머금는다.

겨울 한복판에 천사의 눈물이 꽃을 피웠다. 별꽃보다도 작은 흰 꽃, 저 갸륵한 꽃이 인류를 위한 천사의 기도 같다.

 

<수필뜨락> 2025 봄호

'수필. 시 -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성자 외 1편 / 노정숙  (0) 2025.05.29
천년 고독  (0) 2025.03.12
89세, 고운 손  (3) 2024.12.11
뒷것 김민기를 애도함  (0) 2024.09.06
새롭게 또 다르게 / 노정숙  (4) 202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