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희 선생의 초대로 김주영 작가를 만나러 갔다.
한국산문 10명, 현대수필 4인의 조합이다.
9시전에 야탑역에서 픽업. 첫번째 휴게소에서 서로의 아침을 걱정하며 챙겨온 것들을 먹었다.
든든하고 여유롭게 쉬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이후 쉼없이 달려서 1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청송 <명궁약수가든>은 오늘 휴무일인데 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김주영 선생님 단골이라고.
시작부터 특혜 ㅎㅎ
보약같은 느낌은 누룽지 백숙, 닭고기를 다져서 만든 전, 사과깍두기, 오늘 아침에 땄다는 왕대추, 삶은 밤... 정겹다.
지금 한창인 '청송정원', 4만평의 백일홍 꽃밭을 들러~~
소녀 감성들 충만~~
오래전 여행에서 만난 이정희 선생님 여전한 모습이 반가웠고, 책으로 인연이 된 신선숙, 최화경 작가님을 비롯, 글로만 알고 처음 보는 분들도 모두 인상이 좋다. 특히 임길순 새 회장, 봉 작가의 치열한 봉사심이 고마웠다.
99칸 집이 보존된 송소고택으로
뒷마당에 나무 굴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객주문학관으로 ~~
김주영 선생님을 만나 단체 사진을 찍고
김주영 말씀
12살부터 72세까지 주방에서 살았다는 요리사가 개발했다는 200여 소스가 프랑스 요리를 세계에 우뚝 서게 했다는 이야기. 60년을 주방에서 나오지 않은 집념, 무엇을 하건 이런 끈질긴 정신이 필요하다는.
오케스트라서는 악장이 최고다. 그가 쓰는 바이올린은 크레몰라에서 자란 나무로 만들었다.
알프스 크레몰라에서 비 바람 폭우때문에 옆으로만 자라는, 사는 것이 고통인 나무가 깊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사막이나 광야를 죽은 듯이 굴러다니는 회전초, 굴러다니다 어느 벽에 부딪치면 그곳에서 살아난다. 상처가 작가를 만든다. 하루도 글쓰기를 멈추지않는다. 무릎꿇은 나무처럼 쓴다.
아무일도 안하고 있는 듯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쓰고 있다.
짧지만 강력한 울림이다.
객주문학관은 잘 관리되고 있다.
해설해주신 선생님의 작가에 대한 애정이 흠씬느껴졌다.
객주문학관 개관식때 정진희 회장이 한국산문 회원 90명을 데리고 참석했다고 한다.
김주영 선생님이 정진희 선생과 한국산문을 각별히 생각하는 사연이다.
객주들의 규율이 수준 높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다. 작가의 드높은 도덕성이기도 하다.
돌아보니 볼기맞을 일 투성이다.
풍성한 자료가 잘 정리된 문학관을 나오니 식당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다.
김주영 선생님이 선물 받았다는 시판되지 않는 막걸리와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선생님 말씀은 직구다.
느낀점을 그때 그대로 나온다. 두루두루 시선을 돌리며 관심을 보이는데 거칠지만 선하다.
저 위, 객주들의 지침이 가슴 깊이 있는 탓이 아닐까.
저녁을 먹고, 걸어서 노래방에 갔다.
노래잔치, 어쩜 그리 노래들도 잘하는지... 나는 박수부대로~
86세 김주영 선생님은 무반주 노래 2곡과 '숨어우는 바람소리'를 반주로 불렀다.
노래를 즐긴다는 게 대단하다.
밤길을 걸어서 숙소가 있는 객주문학관으로 돌아왔다.
조용한 밤길에 연잎밭도 지나고 한가로이 별들도 만나고~~
덮지도 춥지도 않은 밤에 또 깊은 이야기가 돌고.
쓸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고 가슴이 싸아해지기도 하고..
많이 웃었다.
"내게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지마라.
난 그런 인간이 아니다. 인생은 ㅈ도 아니다. 이념을 말하는 건 문학의 하수다.
어리석게 사는 것도 삶의 방식이다.
난 농담을 좋아한다. 농담을 하면서 서로 배우는 거다.
어릴때 하도 가난해서 민폐를 많이 끼치고 살았다. 나중에 돈을 벌어서 그 신세를 모두 갚았다.
강의하고 받은 걸 이곳 직원들 저녁 먹으라고 절반을 나눠준다. 그러면 기분이 좋다. 어쩌다 그 봉투를 그냥 가져오는 날에는 괴로워하다가 일주일이 지나면 입술이 터진다. 그래서 받은 돈은 바로바로 쓴다.
돈에서 해방되니 돈이 저절로 생기더라."
"사랑 많이 했지.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들은 떠나면서 돈을 달라고 하데. 그래서 다 줬지."
"잘하셨어요. 그래서 미투 안 걸린거에요." ㅠㅠ .
'바람둥이'라는 별칭이 있었다는 선생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며 옆자리의 신 작가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 ㅋㅋ
대회장처럼 널널한 201호에 4인이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