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칠부능선 2023. 7. 13. 20:40

좀 매력없는 제목이다.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보고 산 책인데 지난번 읽은 <공부론>의 저자와 동명이인이다.

정치적 동물의 길과 인간의 길이 어떻게 나란히 가는지, 어떤 거리를 두고 서로 얽히는지에 대해 다소 시니컬한 어투다.

영화와 코미디는 좋은 자료다. 정치의 민얼굴을 들이밀어도 거북하지 않다.

적절한 명화와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 조용히 은거하면서 자기 삶을 안위와 쾌락만 도모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일은 얼마나 유혹적인가. 그러나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29쪽)

*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 연암 박지원 (43쪽)

* '잠룡'은 아슬아슬하게 잠수하고 있을 때 가장 매력적인 법이다. 권력을 권력의 칼집에 넣어둘 수 있는 역량이 권위를 낳는다. 권력자가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권위를 선물로 받는다. 권위는 권력의 가장 말랑말랑한 형태다. 권위는 권력자가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순간 발생한다. (57쪽)

* 잃어버린 수박 한 개 때문에 불행한 앙통.

 

자고 일어나니 수박밭이 난장판이 되었다. 잃어버린 수박의 자리가 어디였는지조차 이제 알수 없게 되었다. 수박밭이 자유로워져버렸다. 그 상실감은 어쩌면 '배치'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 이처럼 다르면서도 비슷한 세기말의 두 무도회 그림은 당대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 것일까?

<부기발에서의 댄스>는 나머지 춤꿈들을 배제하고 오직 두 명의 남녀에게 집중한다. 반면 <왈츠>에서는 많은 사람이 떼 지어 함게 춤을 추기에, 전체와 부분의 긴장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상대 남성의 얼굴을 화폭 밖으로 밀어버리고, 유일하게 행복한 표정을 지속 있는 오른쪽 하단 여성은 이 무도회에서 예외적인 일물이었을까, 아니면 전형적인 인물이었을까. (102쪽)

* 이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의 누드를 보고 있기에, 발로통의 그림을 보는 관객은 벗은 여성을 보는 동시에 벗은 여성을 보는 이를 보아야 한다. ... 온전한 관음을 방해한다. 발로통의 그림에 윤리의 빛이 깃든다면 바로이 지점에서다. 이 사회가 언젠가 '더러운 잠'에서 마침내 완전히 깨어날 수 있다면 서로를 더럽히는 복수의 축제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아마 이러한 윤리의 빛을 통해서일 것이다. (222쪽)

* 19세기 영국의 문인 토머스 칼라일에 따르면, 굶주림을 면한 원시인이 품은 첫 번째 소망은 안락이 아니라 치장이었다. 세계를 변혁할 역량이 없을 때는 치장을 통해 환상이라도 가져보는 것이 인간이다.

(274쪽)

*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바이러스 방역에 성공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한국이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은 선진국이어서가 아니라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인적, 물적 자원을 갈아 넣을 수 있는 곳, 원하면 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시민의 동선을 샅샅이 복구할 수 있는 곳, 와불처럼 달관하는 대신, 보란 듯이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가지고 너너 할 것 없이 추노꾼처럼 전력 질수 하는 곳, 이곳에 안온한 선진국형 게으름과 권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헬카페'에 독한 위스키와 커피가 넘치듯이, 헬조선에는 독한 역동성이 넘친다. (296쪽)

*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2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