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1,2 / 이민진

칠부능선 2023. 7. 2. 13:14

책을 읽다가 약속을 잊은 건 처음이다.

수욜, 수업 후 읽고 있던 책이 궁금해서 점심을 안 먹고 달려왔다. 푹 빠져서 읽다가 저녁 8시에 하는 성당 독서모임을 잊었다.

이민진의 두 번째 작품 <파친코>에 큰 박수를 보냈다. 거꾸로 읽은 첫 작품에도 코를 박았다. 세 번째 작품을 기다린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그의 호칭에서 그가 쓴 소설의 방향이 보인다.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 첫 편이다. 미국 이민자로서 겪는 청춘의 열정과 방황, 치열한 삶을 그렸다. 2001년 9월 11일, 9.11 사건을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을 그때 희생당한 한국계 미국인 '케이시'의 동생에게 "언니는 한 치의 후회도 없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행과 쇼핑을 좋아하고 단편소설과 시를 썼다는 '케이시 한'에게 영감을 받았다. 뉴욕시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을 기리며 쓴 작품이란다.

온갖 인간성을 가진 군상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완전 악인은 없고 속이 보이는 사람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정도로 구분해 본다. 참 신앙인과 거짓 신앙인의 모습, 절대 존재를 믿는 삶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도 한다.

케이시 한은 분방한 사생활, 튀는 패션, 자유로운 영혼임에도 자신만의 자긍심을 지키는 절대 선이 있다. 열린 결말에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970쪽에 달하는 두 권의 두께가 이리 쓰윽 넘어가다니...

.... 픽션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점이겠지만, 나는 기억에 남아 있는 일평생,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작가는 언제나 먼저 독자가 되어야 한다. 내 평생을 통틀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위안을 주었다. 픽션을 더 잘 쓰는 법을 연구할 때 내 본보기는 언제나 내가 읽고 또 읽고 싶었던 책들이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강력한 첫 문장이다.

 

*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

유능한 젊은 여성 케이시 한은 번듯한 삶과 성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갈망한 것은 화려함과 통찰이었다. (13쪽)

 

* " 케빈은 경영대학원이 인맥이나 쌓는 곳이래요. 인맥은 재능이 없는 사람한테나 필요한 거라고." 케이시는 마지막 말을 하면서 웃었다.

"넌 케빈이 아니잖아."

사빈은 케빈이 가난한 집안의 한국인 여자가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미국인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대부부의 미국인들은 아시아인을 곤충으로 생각해. 좋은 개미, 일벌, 죽지도 않는 바퀴벌레, 셋 중 하나지' 같은 소리를 틈날 때마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자도 아니었다. '무식한 한국인들, 디자니너 패션을 걸친 촌뜨기들.' 그녀는 한국이 여아 낙태 건수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라고 보도한 잡지 기사를 읽은 뒤 이렇게 중얼거렸다.

(1권 286쪽)

* 그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제이와 그 두 여자의 일이 있은 뒤로 뭔가 달라졌다. 케이시는 지금 이 순간 같이 있는 남자에 대한 애정이 없어도 절정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섹스를 항상 감정적인 경험이 아닌, 육제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남자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케이시는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419쪽)

* ...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날 도와줬단 말이다." 사빈도 고함을 질렀다. "이름조차 다 기억 못해.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왜 돕는다고 생각하는 거니? 선행은 돌고 도는 거야. 그게 핵심이라고. 빌어먹을! 넌 왜 그렇게 고집이 센 거냐?" 검은 눈동자 한복판의 진한 홍채가 바깥쪽을 빨아들이는 것 같더니 곧장 눈물이 가득 찼다.

" 사장님은 왜 가난한 사람에게는 선택권조차 없는 것처럼 행동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럼 저한테 주어진 걸 무조건 받아들여야 해요? 항상 황송해해야 하냐고요" 케이시는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2권 172쪽)

*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행복한 표정들이 불쌍한 표정보다 훨씬 많았다. 규칙이 이런 식이라니. 너무 잔인했다. 채용되지 못한 것을 꼭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공개해야 하는 걸까. 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 중 최소한 두 명은 거의 주말마다 케이시 옆에서 나란히 일했던 남자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아기도 있었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하지? 케이시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혹시 내가 떨어지는 입장이었다면 그는 날 걱정해주었을까? 새상은 한정된 파이를 놓고 잔인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4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