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꽃이 찌른다 / 권영옥

칠부능선 2021. 4. 26. 17:52

꽃이 찌른다

권영옥

 

 

난방 방열기 소리와 헐겁게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새끼를 많이 낳은 개가

자식들이 안 보이자 유리판을 긁어대며

간헐적 울음을 토해낸다

 

소리와 소리의 충돌이 낡은 폐를 돌리며

가슴에 있는 먹구름을 쏟아낸다

 

깜빡이는 전구가 혼자서 공중그네를 탈 때

 

저녁 건초더미에서 건져 올린

카네이션꽃다발에 먼지 흙을 본다

천 조각의 글씨가

십여 년 전의 웃음을 몰고 간 생일 축하케잌이다

 

이승의 살이 빠져나간 목도리처럼

엄마는 밤새

그 밤새

구급차 속에서 요단강의 물 주름을 움켜주었다고 하고

 

섣달 긴 밤에는

장롱만 뒤적이다 새벽 찬바람을 맞이했다는 후문이다

가슴 유리창에 낀 성애꽃 같다

 

나의 밤은 그때의 밤처럼 물 주름을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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