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음지 식물 / 김명인

칠부능선 2006. 7. 10. 20:17

 

  음지 식물 / 김명인

 

 

전정을 하지 말아야 할 곁가질 잘랐더니

감나무답지 않게 곧추 가지를 뻗어 그늘에 선

자목련을 메마르게 한다

어떤 나무는 애초 음지에서만 자라도록

마련된다, 현화 식물

저 노박 덩굴은 햇빛만큼 그늘도 잘 견뎌내지만

이런 정원에서 어린 묘목이 어떻게

가지 치고 열매 맺을까

비 올 때 보았다, 물방울을

보석처럼 받쳐든 연록질 잎새들과 담벼락

틈새를 불안하게 비집고 선 섬약한 줄기들을,

건드리면 한꺼번에 무너져내릴 것 같아도

저 덩굴손이

그늘을 양지만큼 환하게 움켜쥐는 것은

덩굴의 넋이 처음부터 노박이로 저의 터전을

일궈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들은, 저희까리 가득 채워 공간을 밀어내다가

잎새 젖혀 속가지로 날아드는 햇빛에게

저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여름이 채 가기 전에 피다 만

꽃떨기 낙화로 지우면서

덩굴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그늘을 키워

저의 공간을 넓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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