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산 / 김명인
나도 그 산 가까이 가본 적이 있다
바퀴에 진흙 덩이가 찰고무처럼 달라붙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허물어지기 전에는 큰 절터였다는
작은 구릉을 건너가자
노란빛 하나도 더 물들 수 없는 잡목숲 사이로
붉은 산이 보였다
잎들이 염주 소리에 가까운 제 흙빛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달그락거릴 때,
명부전 추녀 한 자락이 공중누각으로
얼핏 떠 있기까지 했다
그 산 아래에서 잔 밤에는 배가 몹시 아팠다
창자란 창자 다 꼬여들어 여인숙 한 칸 방이 좁도록
뒹굴다 땀에 흠뻑 절어 가까스로 잠든 새벽녘
곽란의 길보다 더 헝클린 꿈결을 건너와서
누군가 옆에서 속삭였다
없는 산은 남겨두고 돌아가라
없는 절도 버리고 돌아가라
아침에는 장꾼들이 떠들썩하게 난장을 펴는
소읍의 좁은 장터를 지나
어제 마주쳤던 구릉까지 가보았지만 절도 산도
그 자리에서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내 모르는 꽃 덤불 붉은 산 속에 핀다 해도 얽힌
골짜기 파고드는 통증 같은 안개,
이제 그리움조차 지난날 향기 간직하지 못하는데
나 아직도 건너가야 할 저런 난장 노을,
그 산 근처까지만 갔다가 돌아서는 저녁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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