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붉은 산 / 김명인

칠부능선 2006. 7. 10. 00:40
 

붉은 산 / 김명인



나도 그 산 가까이 가본 적이 있다

바퀴에 진흙 덩이가 찰고무처럼 달라붙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허물어지기 전에는 큰 절터였다는

작은 구릉을 건너가자

노란빛 하나도 더 물들 수 없는 잡목숲 사이로

붉은 산이 보였다

잎들이 염주 소리에 가까운 제 흙빛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달그락거릴 때,

명부전 추녀 한 자락이 공중누각으로

얼핏 떠 있기까지 했다

그 산 아래에서 잔 밤에는 배가 몹시 아팠다

창자란 창자 다 꼬여들어 여인숙 한 칸 방이 좁도록

뒹굴다 땀에 흠뻑 절어 가까스로 잠든 새벽녘

곽란의 길보다 더 헝클린 꿈결을 건너와서

누군가 옆에서 속삭였다

없는 산은 남겨두고 돌아가라

없는 절도 버리고 돌아가라

아침에는 장꾼들이 떠들썩하게 난장을 펴는

소읍의 좁은 장터를 지나

어제 마주쳤던 구릉까지 가보았지만 절도 산도

그 자리에서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내 모르는 꽃 덤불 붉은 산 속에 핀다 해도 얽힌

골짜기 파고드는 통증 같은 안개,

이제 그리움조차 지난날 향기 간직하지 못하는데

나 아직도 건너가야 할 저런 난장 노을,

그 산 근처까지만 갔다가 돌아서는 저녁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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