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두 사람

칠부능선 2014. 6. 12. 16:59

<세상의 향기>

두 사람

 

노정숙

 

 

 

삼나무가 늘어선 구좌읍 덕천리, 그곳에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집 나간 어머니의 다섯 아이가 있다. 그중에 6살짜리 막내는 정신지체아다. 방안에서 변을 보고 이불로 덮어놓고 그 곁에서 잠을 잔다. 이곳에서도 흔한 옷가지는 모두 걸레가 되어 있다. 집 안팎을 돌며 대여섯 자루의 오물을 치우고 나면 조금 집다운 꼴로 돌아온다. 나는 처음 이곳을 다녀와서 한동안 속이 울렁거려 밥을 먹지 못했다.

여섯 식구를 챙기는 살림이 중학생인 큰아이의 힘으로 버거운 일이다. 그릇마다 곰팡이가 핀 음식과 밥을 태워 눌어붙은 솥을 보며 함께 간 고 선생의 훈계가 시작된다. 고 선생의 훈계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하듯 거침이 없다. 그러나 소리는 커도 허풍선이라는 것을 아는지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며 간간이 키득거린다. 그가 하는 욕마저도 웃음이 난다. 매번 같은 훈계를 들어서 다음 구절을 외울 정도가 되었는데도 아이들 행동은 변함이 없다. 말 많은 엄마의 잔소리쯤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어지러운 살림보다 달라질 낌새가 보이지 않는 생활 태도가 문제다. 늘 취해있는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자신을 추스르기도 버거워 보인다.

막내를 시설에 보내서 나름의 생활을 배워야 할 텐데 보호자의 결정이 필요하다. 아이 아버지에게 건강진단이며 서류를 준비하라고 했지만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몽롱한 눈빛 너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겸연쩍은 미소만 흘린다.

 

중산간도로 깊숙이 들어가면 밀감농장이 늘어서 있다. 밭 안쪽, 농장지기의 집에는 지적 장애가 있는 농아聾啞 아내와 어린아이 넷이 산다. 벽지가 뜯겨 흙벽이 드러나고, 먹다 둔 밥상은 파리떼투성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서로 엉켜서 잘도 논다. 면역력이 생긴 걸까 자연의 힘일까 모두 건강해 보인다.

무슨 일이건 능숙한 한 선생은 찌든 벽지를 뜯어내고 주위에 어울리는 연한 연두색 벽지로 도배를 한다. 어설픈 보조도 상관없이 빠른 손이 새 방을 만들어 놓는다. 얼룩투성이 바닥도 개나리빛 비닐 장판이 새로 깔린다. 재게 놀리는 그의 몸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된다. 도배를 하고 부엌을 치우고 아이들 머리를 깎아주고 목욕도 시킨다. 땟국에 숨겨있던 귀여운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아이들은 눈빛만으로 엄마의 마음을 읽는 듯 엄마 주위를 맴돈다. 농장 일과 집안일까지 혼자 해야 하는 젊은 가장이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언제나 다정하다.

그는 떠나는 우리를 불러 세워 누런 봉투를 내민다. 상품가치가 없는 파지 밀감이지만 맛있을 거라며 성근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해맑게 웃던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안기지도 못하고 뒷걸음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손을 내밀고 다가왔다. 그때의 아련한 기억을 들춰 본다. 방치된 아이도 과보호 속의 아이도 세월과 함께 커간다. 척박한 환경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키워주기를 빌던 시간이 흘러갔다.

친화력이 강한 고 선생과 재주 많은 한 선생을 바라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들은 어느 곳을 가든 누구를 만나든 바로 친구가 되었다. 공명 능력이 뛰어나 상대의 아픔을 그대로 전해 받는 듯 애달파했다.

“나 혼자만 잘 살민 뭐 헐거라.” 넉넉한 품성답게 몸집도 장골인 고 선생이 자주 하는 말이다. 나만의 안위는 안위가 아니다. 함께 잘 사는 것이 그가 바라는 좋은 세상이다.

다부진 체격의 한 선생 말이 걸린다. “죽으면 뭉그러질 몸뚱어리 아껴서 뭐 햄시.” 내가 어둔한 것은 몸을 아껴서가 아니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내 탓 인양 면구스러운 감정 때문에 몸이 어정쩡했다. 재바르지 못한 몸을 마음 탓으로 돌린다.

빈첸시오 활동에서 만난 두 사람이 그들에게 보이는 행동은 가족을 돌보는 듯 사랑이 배어 있다. 선택이 아닌 의무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고 선생과 한 선생을 따라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내게는 다다를 수 없는 아득히 먼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타고난 품성과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 내가 애쓰며 노력해야 하는 일을 그들은 자신이 오래하던 일 인양 자연스럽게 한다.

이들을 바라보면서 자꾸 커가는 건 내 안의 무능과 부끄러움이었다.

산간마을 아이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주변을 환하게 만들던 두 사람의 훈훈한 향기가 그립다.

 

 

 

<대한문학> 201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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