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담론> 나는 이렇게 읽었다
솔직함의 개가, 진국 서정수필
- 박경주의「눈물」
노정숙
원고지 5매가 채 안되는 짧은 글에 걸려서 한동안 숙연했다. 작은 몸짓으로 전율케 하는 춤사위라고 할까. 치오르는 버선코 하나, 쭉 뻗은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튕길 때 마다 그려지는 한편의 극시다. 몇날 며칠 풀어야 할 정한을 몇 마디로 눙쳤다. 생명줄을 이어갈 한줌 알곡만 손아귀에 몰아 잡은 결연함이다.
남편의 하관식에서 친구의 남편이 뒤에서 끌어안았다. 파놓은 구덩이에 뛰어들거나 지친 몸이 쓰러질까봐 그랬을 게다. 그 순간에 나와야 하는 눈물은 나오지 않고, 남편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상복을 입은 채로 동네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시키다니. 가차 없이 날아온 직구에 얼얼하다.
남편의 오랜 간병에 체력은 바닥나고 연약한 몸은 더 이상 체면에 순종할 수가 없다. 예의와 염치를 챙겨야 하는 머리보다 몸은 정직하다. 홀로 남아 자식을 품어야 하는 모성의 안간힘이 숨겨있다.
아직 한창 때의 남편을 보내는 애통한 심정을 다만 여백으로 전한다. 냉엄한 현장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실감은 더디게 오는 법, 말하지 않음으로 더 크게 부각되는 울림, 울지 않으면서 전하는 통곡이다.
청천벽력과 같은 큰일을 극화시키는 어떠한 수사나 장치 없이 뼈대를 이루는 문장만 오롯이 자기 자리에 들앉혀 놓았다. 분칠은커녕 살을 붙이지도 않은 맨몸 그대로 의연하다. 곁눈질을 모르는 결곡함이 서려있다. 자코메티의 조각 ‘서 있는 여인’ 같다. 가까스로 서있는 앙상한 형상으로 절대고독과 실존을 전하는, 깎이고 다듬고 덜어내서 위태로울 지경으로 가벼워졌지만 두 발은 땅을 굳게 딛고 있다. 가장 작은 것을 통해 보이지 않은 생명의 근원과 죽음의 배후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이 고통이거나 슬픔일지라도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어 비장미悲壯美로 다가온다.
작가는 굳이 무엇을 드러내려고도 증명해 보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절박한 진실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난감하게 전해온다. 이 작품 앞에서 수필의 문학성이나 형상화, 새로움을 운운하는 것은 부질없다.
솔직함의 개가, 진국 서정수필이다.
눈물
박 경 주(朴 景 珠)
남편의 하관(下官)이 시작되었다. 그때다. 갑자기 남편의 친구가 달려와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옴짝달싹 못하게. 행여 넋이 빠지도록 울부짖다 기진할 지도 모를 나를 지켜 주려고, 어쩌면 남편을 따라 땅속으로 몸을 던질 것만 같은 나를 제지하기 위해 그는 그렇게 붙든 것이었다.
주위의 시선이 모두 날 향했다. 사실 더 흘릴 눈물도 없었지만, 난 또 울어야 했다. 춥고 배고프고 지친 나머지 어서 이 의식이 끝나길 간절히 바랐지만, 뒤에서 온 힘으로 날 끌어안은 그 사람의 체면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난 그를 위해 울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포효하듯 소리를 질러보았다. 눈물은 영 나오지 않았다.
그 땐 남편의 간병을 하느라 허약해져 있었다. 그런 몸으로 긴 장례식은 무리였다. 그저 악에 받쳐 버티고 있었을 뿐,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난 처절한 모습이어야 했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으로서 스스로 밥을 찾아 먹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남편이 죽자 갑자기 허기가 졌다. 무엇이든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장례식 내내, “쟤가 무슨 밥이 먹고 싶겠냐.”고 모두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수군거렸다. 남편을 묻고 돌아오는 길, 난 일행 사이를 살짝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소복 차림으로 동네의 조그만 중국집을 찾았다. 자장면을 시켰지만, 잘 먹을 수 없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두 날 찾고 있었다. 그런대로 주린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 문을 열었다. 남편의 이부자리가 휑하니 날 맞았다. 그의 마른 육신이 내 손길에 의지하던 지난 8개월여의 시간. 난 그 시간 위에 엎드렸다. 그 시간이란 공간 위에 영정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필세계> 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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