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에 가거든
노정숙
큰소리 내서 웃지 마세요. 이야기 소리도 낮춰주세요.
천사의 날개를 배경으로 팔 벌리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스마일만 하시고요. 어린왕자와 어깨동무하는 포즈를 취할 때도 예쁜 앞니만 살짝 드러내세요. 나무다리를 건너거나 물속을 들여다보는 트릭아트 앞에서 신기하다며 탄성을 질러도 곤란해요.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눈빗질만 하세요. 발걸음은 가볍게, 서뿟서뿟 걸어주세요. 개구쟁이 톰과 제리 옆에 큼직하게 걸린 ‘조용히’란 글씨 보이시죠. 톰과 제리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랍니다.
납작한 지붕, 허름한 담장에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해요. 집안에는 없는 피아노가 담에 열려 있어요. 선장이 입에 문 파이프에 배가 척 올라앉아 있기도 하고요. 흰 돌고래가 분홍빛 파도를 타고 살짝 웃고 있지요. 그림만 있는 게 아니라 주름 깊은 어머니 얼굴 아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라는 수필집 소개도 있고, ‘가풀막에 핀 꽃’ 같은 시도 있네요.
2년마다 새로운 그림으로 단장을 한다지만, 낡은 빈집에 빛바랜 넝쿨장미가 을씨년스럽지 않나요. 폐가의 부엌 빈 벽에 색색의 반찬통, 젓갈 항아리들과 굴비가 한 두름 걸려 있네요. 작은 탁자에 꽃병과 가계부가 있고, 그 곁에 다홍색 원피스를 입고 화장대에 앉은 여자가 치장을 하고 있어요. 햇살이 슬몃 들어오는 벽에는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아포리즘 아래서 머리에 수건을 질끈 매고 인수분해를 풀고 있는 학생이 보이네요.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집에 원색의 그림이 무색하게 창밖에는 줄기찬 생명력으로 담쟁이가 뻗어가고 있어요.
빨래가 널린 집도 있네요. 속옷과 겉옷이 나란히 햇살을 고르게 받고 있어요. 주로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안은 적막강산인데 밖은 문전성시에요. 주말이면 주인 허락도 없이 관광객들로 난장亂場이 되기도 하지요.
꼬불꼬불 좁은 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꼭대기에 탁 트인 정자가 기다리고 있어요. 군데군데 깃발도 펄럭이지요. 이순신 장군이 통영성을 방비하기 위해 동쪽 벼랑에 만든 망루인 동피루를 그 자리에 복원해 놓았지요. 이 사업 때문에 동피랑 마을이 철거대상이었어요.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정화사업 때문에 많은 달동네가 헐려서 없어졌는데, 이곳 동피랑은 벽에 그린 저 그림들 덕으로 화를 피했답니다.
동피루에 오르면 입을 열어도 괜찮습니다. 맘껏 감탄사를 풀어놓아도 좋고, 지나오면서 보았던 벽화에 대해, 온갖 느낌을 풀어놓아도 좋습니다. 동피루는 단정한 기와 단청에 사방이 트이고 마루가 널찍하게 깔려있지요. 아예 신발을 벗고 올라앉아도 좋습니다. 언덕바지를 오르느라 힘들었던 발에게도 바람맞이 해주세요.
저 아래 중앙시장과 통영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은 제철에 맞는 바다비린내 흙내를 몰아오네요. 이곳에서 충무공의 발자취를 떠올리며 존모尊敬의 애틋함을 풀어 봐도 좋겠지요.
동피루에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동피랑은 덩치 큰 동생을 업고 있는 야윈 누나 같아요. 낡은 옷에 덧댄 화사한 새 헝겊 같기도 하고요.
시민단체가 하는 벽화 운동이 ‘그 언덕의 재발견’, ‘동피랑 부르스’, ‘땡큐 동피랑’이라고 하네요. 이런 멋진 구호답게 구지레한 달동네를 환하게 만들었어요. 통영시에서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작가들의 작업실로 빌려준다네요. 글쎄요, 시시때때로 웅성거리는 기척과 두리번대는 눈길을 느끼면서 작업이 제대로 되려나 모르겠어요.
‘동양의 나폴리 통영, 통영의 몽마르트 언덕 동피랑’, 지나치게 거창한 수식어가 붙어있네요. 항구를 끼고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집들이 멀리서 보는 나폴리와 비슷하긴 해요. 숨이 차게 올라가야 하는 게 몽마르트 언덕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화사한 꽃그림 아래 녹슨 철대문을 보는 난감함이 몽마르트 언덕 중간에 손을 벌리던 집시를 만났을 때처럼 민망스럽긴 했어요. 제 실없는 생각도 잠깐이었어요.
좁은 골목 전봇대에서 만난 노란 글씨 때문에 가슴이 뜨끔했어요. ‘할머니가 병원가시면서 하신 말씀, 진짜 조용히 다녔으면 좋겠네. 조용히 다니세요’ 할머니 거적눈에 붙어있을 시름이 읽혀지지요.
통영사투리를 소개하는 이런 글에도 마음이 짠해지네요. ‘속이 재리서 문디가 될라카다가도 저게, 뻥 뚫핀 강구안을 채리보모 분이 써언하니 가라앉고 그라는기라. 그라이께 오금재이 오글티리고 살아도 내구석이 좋은기라. (속이 상해서 문드러지다가도 저기, 뻥 뚫린 통영항을 보면 화가 시원하게 가라앉고 그러지. 그러니 다리를 오그릴 정도의 작은 방이라도 내가 사는 이곳이 좋은 거야.)’
동피랑은 벽화 때문에 살아남은 우리의 이웃 달동네에요. 종종색색 꿈꾸게 하는 벽화로 환해지는 골목에 복기미가 피어오르기를 빕니다. 조용히.
<좋은수필>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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