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수필> 소수자 이야기 - '공존'에 대하여
여자의 땅
노정숙
여자가 웃는다.
서너 겹으로 겹쳐 입은 스커트 자락에서 쉰내가 나고, 알록달록 화사한 무늬의 웃옷은 계절을 비껴났다. 부수수한 머리에 꽃자주 색깔의 머리핀이 어지럽게 꽂혀 있다. 입술은 진한 빨강으로 두텁게 칠했다. 여자는 여자임을 놓지 않고 있다. 간간이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면 여자의 입에서 단내가 난다.
중산간도로 입구에 있는 12평 임대아파트가 여자의 집이다. 아이 넷과 친정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다.
여자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한 몸으로 4․3사건 때 실종된 남편을 찾으러갔었다고 한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큰 구덩이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뒤엉켜져 있었고 그 중에서 남편의 시신을 찾는 동안 여러 번 실신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 여자가 태중에 있었다는데, 아기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모양이다.
딸의 불행이 자신의 탓이라며 가슴을 치는 어머니의 울음만이 방안을 채운다. 딸네 살림을 맡아서 해주고 있는 어머니는 딸을 두고 차마 눈 감을 수가 없다며 노구老軀 를 이끌고 삶을 꾸리고 있다.
온전치 못한 여자를 왜 결혼을 시켰느냐고 물으니, 본능 때문인지 남자는 더 좋아한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해서 결혼을 시켰는데 아이 넷을 낳고 건강하던 사위가 공사장 사고로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네 아이 중 셋이 엄마처럼 지적장애아인데 아직은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기초생활보호자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 그들에게 존엄성이라는 보호받지 못한 권리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여자는 자주 환하게 웃는다. 그런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맑은 정신이 안쓰럽다.
볕바른 양지에 앉아 치마를 펄럭이며 지나가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는 여자, 시들지 않은 본능만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알린다. 정직한 모습이 이리 민망할 줄이야.
제 몸도 못 추스르는 엄마지만 아이에 대한 집착은 본능에 가깝다. 아이들이 안보이면 불안 증세를 보인다. 이 집의 급한 문제는 아이들을 특수학교에 옮겨 제대로 교육을 받게 해야 하는 일이다.
돌아오는 길, 수선스럽게 헝클어진 마음을 바람 탓으로 돌린다.
여자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곳의 토양과 풍습. 남자가 뱃일을 하러 나가고 나면 모든 일은 여자의 몫이다. 예고 없는 풍랑은 여자를 가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남자, 여자의 일이 따로 없다.
다복한 가정의 연로한 부모도 각각의 살림을 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살림을 따로 하는, 합리적인 이곳의 풍습이 건강의 비결인 듯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찍이 독립적이다.
한림 쪽에 늘어선 선인장밭이 장관이다. 백년에 한 번 핀다는 선인장 꽃을 이곳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가시를 헤치고 나오는 노란 꽃잎이 한지처럼 투명하다. 꽃을 피우기 위해 견딘 시간만큼 꽃을 보여주는 시간은 길지 않다. 줄기를 잘라 모래에 꽂아놓으면 번식하는 손바닥 선인장, 꽃조차 이곳의 강인한 여자들을 닮았다.
남편의 파견 근무지였던 제주의 풍경이다. 성당 빈첸시오회에서 종교를 초월하여 극빈자를 돕는 모임에 들었다. 깊은 생각 없이 돕는다고 시작한 일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세상에서 극빈자라고 분류했던 그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간 것이 사회의 책임도 있다. 소외된 삶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 억울하게 내몰린 역사의 희생자, 장애에 대한 편견, 품어주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 그래서 돌아설 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던가 보다.
생소했던 풍습과 꿈결 같은 풍경이 익숙해갈 무렵 제주를 떠나게 되었다. 가슴 아린 추억과 함께 그리운 제주. 그 곳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에서 바람이 분다.
<수필과비평>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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