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강은교
편지 하나 날아왔습니다.
'유니세프'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긴급지원 요청 ―― 레소토 어린이를 위한 담요 수용작전
나는 그 작전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5만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매달 수백명의 어린이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덮고 잘 변변한
담요 한 장이 아쉽다는 것은 상상하시기 어렵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다. 매달 수백명이 죽고 있는 상황,
덮을 이불이 없음.
나는 그 작전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죽고 있다? 그런데 덮을 이불이 없다?
이불들이 구름에 실려 도시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 살이 이불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도했습니다. 이불을 위해서 고통을 위해서 이불에 서리는 식은땀을
위해서……,
긴급지원 요청 ―― 이불이 없음, 뼈가 없음, 덮을 구름이 없음,
뿌릴 눈물의 씨앗이 없음, 황폐함, 황폐가 우리의 이름임, 우리가
보낼수 있는 것임, 황폐에 뿌릴 소금이 없음, 소금인 사랑 하나가
없음……
편지 하나 날아왔습니다. 노오란 편지 하나 ……
편지 하나 날아왔습니다. 편지에는 구름이 그려 있었습니다.
내가 구름이라고 생각한 것이, 구름은 없고, 구름 속에 해도 없는.
나는 그 작전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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