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구름 속의 묘지 / 강은교

칠부능선 2013. 6. 28. 19:24

구름 속의 묘지

강은교

 

 

  바퀴벌레 약을 만들었다.

  이웃집 부인이 가르쳐준 대로

  감자를 삶아서 으깨어 붕사를 넣고, 설탕을 치고, 동글동굴하게 말아서.

  집안 곳곳에 놓아두었다.

 

  바퀴벌레여,

  어딘가 숨어 있을 그대여

  이리로 오라,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이 달콤한 성찬을

  이리로 오라,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이 달콤한 구름 속의 묘지를

 

  아, 장롱 뒤며, 찬장 뒤에 그것을 은밀히 감출 때의

  그 쾌감

  마치 살인이라도 준비하듯이

  우리가 우리를 죽이고 싶을 때의

  그 쾌감

  마흔이 넘어서도 살고 있는

  이 절망의 기쁨

 

  아 그대여 오라, 우리가 죽이는 우리의 역사의

  이 달콤한 구정물,

  달콤하라, 달콤하라, 세계의

  뒷길들에 있는 모든 자질구레한 실밥들이여

  이 멋대로 흘러감이여.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상학적 시 레시피 / 이가을  (0) 2013.08.02
책읽는 남자 / 남진우  (0) 2013.08.02
편지 / 강은교  (0) 2013.06.28
어떤 비닐 봉지에게 / 강은교  (0) 2013.06.28
빨래 너는 여자   (0) 2013.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