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닐 봉지에게
강은교
어느 가을날 오후, 비닐 봉지 하나가 길에 떨어져 있다가 나에게 굴러왔다.
그 녀석은 헐떡헐떡거리면서 나에게 자기의 몸매를 보여주었다.
그 녀석이 한 바퀴 빙 돌았다, 마치 아름다운 패션모델 처럼
그러자 그 녀석의 몸에선 바람이 일었다.
얄궂은 바람, 나를 한대 세게 쳤다.
나는 나가떨어졌다. 한참 널브러져 있다가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녀석, 비닐 봉지는 바람에 춤추며 가는 중이었다.
나는 마구 달려갔다, 바람 속으로
비닐 봉지는 나를 돌아보면서도 자꾸 달아났다. 나는 그 녀석을 따라갔다.
넘어지면서, 피 흘리면서
쓰레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실개천이 쭈빗쭈빗 흐르고,
흐늘흐늘 산소가 없어지고 있는 곳으로,
우리의 꿈이 너덜너덜 옷소매를 흔들고 있는 곳으로,
비닐 봉지는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나는 위대해! 나는 영원해!
나는 몸을 떨었다, 귓속으로 그 녀석의 목소리가 쳐들어왔다.
- 나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네, 썩지 않는 인간의 자식이라네.
비닐 봉지는 바람 속에 노오란 꽃처럼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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