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신간을 기웃거리지 않고, 내 책꽂이를 뒤적거리고 있다.
책을 하도 잘 분양하니까 때론 필요해서 찾을 때 없는 책들도 많다.
몇 달 전, 새로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분께 두 박스씩 세 번을 택배로 보낸 것이 마지막이다.
<간디의 물레> 박종철
"참다운 문명이란 자발적 포기의 기술이다."
- 마하트마 간디
첫 표지를 넘기면 첫 장에 써 있는 글이다.
녹색평론사의 재활용 용지로 만든 두툼하지만 가벼운 책이다.
오래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밑줄친 곳이 많은 이 책, 분명 내가 밑줄친 부분들인데 새롭다.
그때도 이 책을 읽으며 자동차를 버려, 컴퓨터를 버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책을 내는 일도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숲을 없애는 일이니까.
이래 저래 자꾸 죄만 늘어간다. 나를 많이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이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이른바 문명, 그중에서도 특히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인간적·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염된 언어> 고종석
'내가 국어의 혼탁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불순함의 옹호자이기 때문이다.
불순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의 단색 취향,
유니폼 취향을 혐오한다는 것이고,
자기와는 영 다르게 생겨먹은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른바 토박이말과 한자어와 유럽계 어휘가 마구 섞인
혼탁한 한국어 속에서 자유를 숨쉰다.
나는 한문투로 휘어지고 일본 문투로 굽어지고 서양 문투로 닳은
한국어 문장 속에서 풍요와 세련을 느낀다.
순수한 토박이말과 토박이 문체로 이루어진 한국어 속에서라면
나는 질식할 것 같다.
언어순결주의, 즉 외국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의 혐오, 북벌北伐, 정왜征倭의 망상,
장애인 멸시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흔히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다.'
-<서툰 사랑의 고백> 중에서
* 10년도 되기 전에 그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순화되었다. 아니 스스로 죽임을 자초했다.
객담과 변주까지도 허리를 곧추세우게 하는 힘이 있다. 말랑말랑 하지 않지만 매력이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신라향가 '제망매가'를 '누이제가'로, '
헌화가'를 '꽃흘가'로,
'원왕생가'를 '달하가'로 부른 홍기문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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