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어른의 학교 / 이윤기

칠부능선 2010. 8. 29. 13:56

 

 

어른의 학교
-이윤기 


  버려야 할 버릇이 어디 하나둘이겠습니까만, 나에게는 요즘 들어서  부쩍 고치려고 힘을 많이 기울이는 더러운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별로 존경하지 않으면서도,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은근히 깔보는 버릇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척하다가도 나이를 알게 되면 속으로, 응, 내가 입대하던 해에 너는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누고 다녔겠구나, 혹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태어난 것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이런 식입니다. 물론 욕먹을까봐 말은 그렇게 안하지요.

  내가 가까이 사귀어 모시는 선배 가운데, 미국의 대학교 앞에다 조그만 식료품 가게를 연 분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그 선배는, 선비형에 가까운, 다소 완고하고 꼬장꼬장한 한국인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본보일 것이 없다면서 아들딸이 당신 가게 출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정도랍니다. 그는, 아들딸이 기웃거려야 하는 곳은 도서관이지 당신의 가게가 아니라고 믿는다는 뜻에서, 맹자 어머니는 아직도 옳은 것입니다. 그는 나에게, 미국에서 자라고 있는 한국 아이들의 장래를 자주 걱정하고는 했습니다. 그는,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서 때문에 아이들의 필체가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이나, 전자계산기에 중독된 나머지 구구단을 이용한 간단한 암산까지도 힘들어 하는 것은 분명한 퇴화의 징조라고 하는 등, 하여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대들고는 했지요. 장차 그들이 살 세상에서는 필체 좋은 것이나 속셈 빠른 것 따위는 별 미덕으로 꼽히지 못할 것이라면서요.

  그런데 그러던 그가, 얼마 전부터는 가게에서 팔 물건 떼러 대도시 도매상 갈 때는 지난 초가을에 대학생이 된 아들을 반드시 대동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이는, 아들딸의 당신 가게 출입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그의 심경에 ‘발전적인’변화가 생긴 증좌임에 분명한 것이지요. 그 발전적 변화의 내역은 이렇습니다.

  그가 자기 손으로 떼어온 음료와 먹을거리가 자구만 재고로 남아도는 까닭을 궁금해 하고 있는데, 아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학생들의 입맛은 대학생만 압니다」, 그러더라는군요. 그래서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아들 입맛에 따라 물건을 떼어왔더니 신통하게도 떼어온 족족 팔려서 재고가 남지 않더라는군요.

  “열두 살배기 착한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눈에 번쩍 띄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귀엽습니다. 집안도 그런 대로 살림을 꾸려갈 정도는 됩니다. 아버지는 지위가 높지는 않아도 늘 열심히 일을 하는 분입니다. 어머니는 체중이 조금씩 늘어가는 걸 걱정하지만, 그래도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지나치게 짜증스러워하는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녀는 꽤 행복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소녀에게 어느 날 천사가 와서 말합니다.

  「착하게 사는 네가 기특하다. 반드시 들어줄 터이니 소원을 한 가지만 말하거라. 딱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 내일 밤에 다시 올 테니까 잘 생각했다가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다오. 딱 한 가지라는 걸 잊지 말아라.」소녀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합니다. 하기야, 천사가 소원 한 가지를 이루어 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를, 무지하게 예쁘게 만들어 달랠까? 공부를 무지하게 잘하게  만들어 달랠까? 입학시험을 없애 달랠까……」

  그러나 이걸 말하자니 저게 걸리고, 저걸 말하자니 이게 걸립니다.

  「……아빠가 돈을 아주 많이  벌게 해 달랠까? 엄마의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해 달랠까? 큰 집을 한 채 지어달랠까? 좋은 자동차를 한 대 달랠까……아니, 그러고 보니……」

  소녀는 천사에게 말할 소원을 생각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소원을 생각하다 보니, 넉넉하고 행복하게 여겨지던 자기 주위가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밤새 고민하던 소녀는 천사가 나타났을 때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맙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약속을 거두어 가셔요. 지금이 좋아요. 행복해요. 천사님께 말씀드릴 소원을 생각하다 보니 제가 막 불행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덕분에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천사님이 이루어지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속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심술궂은 약속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약속을 거두어 가셔요.」

  이것은, 딸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쓴, ‘최상의 소원은  최악의 소원(The  best but  the worst wish)" 라는 동화의 내용입니다. 나는  이 글을 읽고,「어떤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원이 없는 삶,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 반드시 양질의 삶일 리야 없겠지요만, 삿된 소원, 삿된 꿈이 우리를 누추하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아이들 앞에서는 장난으로라도 복권 같은 것을 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지난 여름의 자동차 여행에서 우리  일행은 휴대용 가스버너와, 휴대용 가스를 여러 통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북미 대륙 서부의 사막지대로 접근하면서부터 휴게소에는, 프로판 가스통을 자동차에 싣고 다니면 위험하다는 경고문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온도가 오르면, 가스통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닌게아니라 가스통에도, 섭씨 40도가 넘으면  폭발할지도 모르니까 사막지대로 들어갈 때는  자동차에 두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텍사스 주 경계를 넘고부터 기온은 40도를 웃돌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철에 주차장에 주차해 있을 동안 자동차 안의 온도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잘 아시지요? 우리 어른들은 결국, 다섯 개나 남은 가스통을, 누군가가 주워 쓸 수 있도록 휴게소의 나무 그늘에다 유기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깝기도 하고, 만일의 경우가 걱정스러웠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지요. 그런데 여행 중의 영상 기록을 담당하던 고등학교 3학년짜리(지금은 대학생) 아들이 지나가는 말로 이러는 겁니다.

  「아이스박스에는 얼음과 먹을거리만 넣는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

  아이의 말을 좇아 우리는 가스통을 아이스박스에 넣었습니다. 뒤에 수소문해 보고 알았거니와, 우리는 섭씨 50도가 넘는 북미 대륙 서부의 사막지대에서도 끄떡없이 가스통을 가지고 다닌, 희귀한 여행객이었더군요.

  자식 자랑이 아닙니다. “뒤에 난 사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後生可畏)”느니, “아랫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不恥下問)”느니 하는 옛말 그르지 않더라고요. 어린 것들은 능히 스승 노릇을 하니 우리 사는 데가 온통 학교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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