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패자의 기록

칠부능선 2006. 4. 23. 01:00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문학은 패자의 기록이란다.

 

 

패자의 구구한 변명과,

참회의 기록이 문학이라는 유안진 샘의 말씀.

41년생으로 2달 전에 명퇴 하셨다지만

여전히 수줍고 겸손하고 고운 모습이다. 

사랑스럽단 느낌이 들었다.

 

 

사랑만큼 황홀한 거짓말은 없다고...

일찌기 포기한 사랑,

괜찮은 남자가 왜 나같은 사람과 결혼할까.

왜 20대에 이런 생각을 했는지.

부양가족이 많은 가장이라해도 그렇지...  혼자살려고 했는데

34세 겨울에 결혼을 하고, 詩만 쓰고 싶었지만 ,

여러가지 사정으로 직장을 일찍 그만두지 못했단다.

 

 

글을 좀 못쓰는 것도 '선행'이란다.

그래서 잘 쓰는 사람이 돋보이는 것이라고,

詩가 돈이 되지 않기때문에 별볼일 없는 자기 같은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이며,

詩가 돈이 된다면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에서 다 차지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황홀한 거짓말 / 유안진

 

 

               

"사랑합니다."

너무도 때묻힌 이 한 마디 밖에는

다른 말이 없는 가난에 웁니다.

 

처음보다 더 처음인 순정과 진실을

이 거짓말에다가 담을 수 밖에 없다니요.

 

한겨울밤 부엉이 울음으로

여름밤 소쩍새 숨넘어가는 울음으로

"사랑합니다."

 

샘물은 퍼낼수록 새이 되듯이

처음보다 더 앞선 서툴고 낯선 말

"사랑합니다."

 

목젖에 걸린 이 참말을

황홀한 거짓말로 불러내어 주세요.

 

 

 

 

 

   병마총 / 유안진

 

 

 

 서안 가서 병마총을 구경하다가, 되살아난 미치광이 폭군을 보았다, 재위 2년부터 제 무덤을 팠다는 진시황이 나를 픽 웃었다

 

 나도 중학교 적부터 내 무덤을 파고 싶었지,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안 되려던 그 때부터, 원고지 속으로 숨고 싶었지, 내가 싫어하는 <나들>을 깊이 묻어서 감추고 싶었지, 술 담그고 싶었지, 장 담그고 싶었지, 아니지, 원고지에 묻혀서 부활하고 싶었지, 포도주, 간장, 고추장처럼 <다른 나들>로 되살아나고 싶었지

 

 아직도 원고지에다 내 무덤을 파고 있다, 구겨 뭉쳐 던져버린 파지에서 살아나지 못하는 나무들의 비명에 귀 틀어막으며, 새 원고지에다 내 무덤을 파고 판다, 나도 나의 병마총에 미쳐, 혈세를 강탈하는 나의 폭군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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