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제트스키와 백령도

칠부능선 2022. 10. 6. 22:56

제트스키와 백령도

노정숙

 

백령도에서 나오는 날은 바람이 제법 불었다. 전날 유람선 타는 일정이 취소된 걸 보면 제 시간에 떠날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2층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밀려오는 파도를 즐기는데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요동칠 때마다 비명을 지른다. 앞으로 오라고 했다. 조심조심 앞자리로 나와 앉아 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부터 조용해졌다.

멀미로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도 있다. 좀 전에 먹은 아이스크림 탓인지 나도 속이 울렁거려서 앞자리를 포기하고 맨 뒤로 갔다. 뒷자리는 요동이 훨씬 약하다.

 

처음 간 백령도는 관광지가 아니었다. 섬이지만 어업이 아닌 70% 논농사가 주업이며, 대표음식도 해산물이 아닌 메밀냉면과 메밀칼국수다. 군인이 주민보다 많다. 서울보다 평양이 가까운 서쪽의 땅 끝, 우리 땅을 지켜야할 군사 지역인 것이다. 인천에서 북한해역을 지나는 직선거리로 올 수 없어 공해를 돌아 4시간 걸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 입구에는 택배 상자가 가득하다.

섬에만 있는 것, 콩돌해변의 크고 작은 콩알을 맨발로 느끼며 밀려오는 파도에 바지 아랫단을 적셨다.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두무진, 제 모양에 어울리는 이름을 얻고 늘어선 바위는 짐작할 수 없는 시원으로 이끈다.

고구려시대에 이 섬은 곡도였고 고려 현종 때 백령진, 고종 33년 이후에는 황해도 장연군, 1945년 해방과 함께 경기도 옹진군이 되었고, 지금은 인천광역시다. 지난한 섬의 이력은 인간의 일이고, 섬은 섬으로 바람과 구름을 누리며 곳곳에 해당화를 피우며 기암괴석과 주상절리를 품고 무장무장 이어가고 있다.

수만 마리의 괭이갈매기가 절벽에 알을 낳아 포란하고 있다. 갓 부화한 털이 성근 새끼 갈매기 곁에는 어미 갈매기가 엄호를 하고 있다. 종족보존의 지엄함인지 생명의 현장이 치열하다. 휘갈겨놓은 갈매기의 배설물 세례를 받지 않는다면 이곳도 장관이다.

규조토로 단단한 사곶사빈은 덤프트럭이 오가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유사시에는 천연비행장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6 • 25 전쟁 때 비행장으로 활용하여 군 작전에 공헌했단다. 단단해서 좋은 것이 흔치 않은데 세립질 모래해변의 희귀 기능이 놀랍다.

해변과 숲, 곳곳에 지뢰표시지역와 군사작전지역이라는 빨간 경고판에 준수사항이 적혀있다. 바다 가까운 해변에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측에 있는 전화기의 신호단추를 누르시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쓴 팻말 아래 귀순자 인터콤이 있다.

천안함위령탑은 탱크와 다련장 로켓포가 맞이한다. 매점에서 파는 흰 국화 한 송이씩 들고 언덕배기를 오른다. 피격위치가 내려다보이는 확 트인 곳에 이르니 ‘천안함 46 용사들의 숭고한 뜻과 희생을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문구 아래 사진과 이름이 있다. 나는 바로 어미의 마음이 된다. 늠름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러본다. ‘불멸의 성좌여 바다의 수호신이여 / 아, 그날 2010년 3월 26일’ 시인이 읊은 애도는 공허하다. 그 어떤 영웅이 되기보다 아들을 곁에서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길 원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가슴이 저릿하다.

여기 오지 않고

나의 시대를 말하지 말라

여기 오지 않고

조국의 절반도 말하지 말라

여기 오지 않고

너의 애 타는 사랑을 말하지 말라 (하략)

백령도에 와서 / 고은

 

고은 시인의 단호한 일갈에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린다.

잊고 사는 전쟁, 휴전 중이라는 걸 여기 와서 확인한다. 어쨌거나 바다에서는 아니 배에서는 미심쩍은 일이 많다. 추측이건 사실이건 바로 말할 수 없는 사건은 시간이 필요하다. 밝은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건 더 아프다.

 

배에서 내려 차에 올라 일행 중 90대 김 선생님께 멀미 안 하셨냐고 물으니, 공짜로 제트스키를 탔으니 좋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김 선생님은 시멘트 길 언덕 오를 때만 한 번 쉬고,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짬짬이 사탕을 나누어주신다. 바닷가로 이어지는 긴 계단인 두무진도 지팡이를 짚었지만 또박또박 걸으시고 표정도 밝으시다. 존재 자체가 귀감이다.

뱃멀미로 창백해진 젊은 얼굴 위에 제트스키의 쾌감을 겹쳐본다.

오래 전,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하던 때는 멀미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섭생과 체력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가 목디스크를 맞이하고 보니 도무지 얼굴을 펼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찡그리고 웅크리고 있다. 비로소 마음보다 몸이 조정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걸 알겠다. 그걸 시작으로 내 몸은 이울어가고 있다. 그러나 통 큰 척하며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작은 글씨가 안 보이고, 작은 말이 잘 안 들린다. 문자와 놀고 있으니 돋보기는 벌써 썼지만 보청기는 아직 미루고 있다. 소리는 들리는 것만 듣기로 한다. 너무 많은 소식을 다 알 필요는 없다. 신포도의 비유처럼 내게 이로운 말만 들을 것 같다. 발목이며 무릎이 자주 비명을 지르지만 극단 조치보다 살살 어르고 있다.

큰 배의 앞과 뒤가 내 마음 자리처럼 간격이 크다. 무조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몇 가지 선입견으로 이미 싫은 일이 있다. 다가오는 것을 직시하면 두려움이 덜하다.

일상이 답답하지도 않은데 기회가 되면 나는 무조건 몸을 일으킨다. 내게 잠식한 역마살이라는 액운조차 행운으로 받는다. 들뜰 수 있는 게 어딘가. 가라앉으려는 몸에게 세뇌를 시킨다.

올여름에는 서쪽 바다 끝 백령도를 그리며, 가까운 강에서 제트스키를 타야겠다.

<문학과 시드니> 2호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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