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시에 대한 짧은 생각들 / 이정록

칠부능선 2019. 2. 20. 23:09

 

  솔방울

 

  숲을 거닌다. 바닥에 뒹구는 솔방울이 동그랗다. 그늘 깊은 습지라는 증거다. 솔방울은 물기를 머금으면 오그라든다.

조금 내려가면 옹달샘도 있겠구나. 운이 좋으면 산삼을 만날 수도 있겠구나. 산마루에 올라서니 솔방울이 꽃처럼 벌어져 있다.

솔방울 가시가 밖으로 날카롭다. 솔 씨는 벌써 다 빠져나갔다. 양달 솔방울이 먼저 새와 날다람쥐의 먹이가 된다. 가볍다.

이런 까닭으로 솔방울이 방 안 보습제로도 많이 쓰인다. 마른 솔방울을 물그릇에 한 시간 남짓 담가두면 동그랗게 오므라든다.

거실 귀퉁이나 텔레비젼 위에 여남은 개 올려놓는다. 작은 바구니에 담으면 소품 장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숩도 조절만이 아니라

향이 일품이다.

  그 솔방울에 시의 큰 스승이 있다. 가슴속 물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인은 응달이 제자리다. 씨앗을 오래 웅크리고 겨울을

나야한다. 겨울 끝자락에 눈 녹고 봄 햇살이 터질 때, 그 춘궁기에 솔향 짙는 언어를 허기 속에 건네면 된다. 낙하의 기억을 차고 올라

훨훨 창공을 날며 구름의 문장도 만나리라. 가슴에 물기가 넉넉하지 못하면 마른 솔방울처럼 가시가 돋는다. 상처를 헤집는 문장이

뛰쳐나온다. 젖은 몸으로 쓰는 글에선 솔향기가 난다. (203쪽)

 

 

 

 

 

  17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 구덩이에서 어떻게 기어 나오느냐고요? 시인의 슬럼프는 질투심에서 오죠. 좋은 시를 보는 눈은 떴는데,

좋은 시를 쓰는 자신의 창작 능력은 벼랑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것 같죠. 절망이죠. 바로 그때, 더 좋은 시를 찾아서 읽는 거예요.

몸에서 등나무 넝쿨이 번져 오를 때까지.

  절망에 빠졌을 때, 희망을 자극하는 겁니다. 양동이 두 개에 물을 반쯤 담고 쥐를 한 마리씩 가두는 겁니다. 한쪽은 뚜껑을 닫아

칠흑을 만들어주고, 한쪽은 푸른 하늘이 보이는 곳에 놔두는 거죠. 어둠 속의 쥐는 금세 익사합니다만 하늘을 보며 헤엄치는 쥐는

오래도록 생존합니다. 먹이만 주면 명대로 살지요. 나중에는 하늘을 보면서 수영을 즐기죠. 아예 수영 선수로 살아가는 것이죠.

슬럼프에 빠진 시인에게 다른 시인의 좋은 시는 하늘과 같지요. 희망이죠. 식욕은 자꾸 떨어질 테니 먹이는 물에 둥둥 뜨겠지요.

그 썩어가는 먹이를 밟고 양동이 밖으로 뛰쳐나오는 겁니다. 슬럼프는 분명 식욕을 떨어뜨립니다. 하지만 정신의 허기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때로 작가는 스스로 뚜껑을 덮고 어둠 속으로 침잠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하늘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지요.

(284쪽)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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