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에서

바람이 필요해

칠부능선 2014. 2. 28. 22:04

 

설악의 눈세상으로 초대를 받았다.

숙제는 다락같이 밀려있는데, 그냥 떠났다.

 

미시령을 타고 척산에서 만나

일단 점심을 먹고, 속초 시내에 있는 '난장'이라는 생선요리 전문집, 싱싱한 생선조림으로 시작부터 행복 만땅. 

 

설악의 눈이 기다리고 있다.

도로 옆에 담처럼 쌓인 눈들이 폭설로 뉴스를 장식하던 것이 실감난다.

 

 

 

           아이젠을 차고 뚜벅 뚜벅,

 

 

                                      깊은 곳에 숫눈,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만 그대로 있다.

 

전생에 내가 자주 목욕하던 비선대.

 

 

 

                                       누군가가 만든 눈탑이 녹아 피사의 사탑을 닮아가고 있다.

 

 

                오래 전에 1년 6개월 살았던 속초해수욕장 부근, 참 많이도 변했다.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아니, 바다는 그대로겠지. 솔숲도.

 

 

 

아고~~  무서운 사랑의 맹세다.

태양이 불길을 거두고 바다가 마를 때까지라니...

너무 무겁다.

 

 

물치항에서 회를 떠서 평창 팬션에 왔다.

운짱을 배려해서 저녁은 숙소에서 함께 느긋하게..

 회를 먹으니 소주가 필수라고. 처음엔 소주, 강원도 옥수수 막걸리에, 저녁상을 물리고,

다시 재정비, 과일과 와인으로 마감. 

배만 부르고 오늘도 취하는 건 실패다.

 

한밤중에 팬션 언덕에 올라 별들에게 인사하고. 또릿한 모습을 보여주니 반갑구만. 

떠나기 전날을 들떠서 못 자고, 떠나와서는 얘기하느라 못 자고.

다음날 아침, 이틀 잠을 설치고도 쾌청이다.

 

 

                                      가까운 월정사를 가다. 가을에 다녀간 코스다.

                                      전나무 숲길이 시작하는 곳에 있는 이 키 큰 전나무, 멀대같은 큰 형상이 내 발걸음을 잡는다.

 

 

 

 

 

 

봉평 장날이다. 장날이라도 그리 번잡하지는 않다.

'늘봄 먹거리'라는 메밀음식전문점에서 점심, 여기도 지인의 단골집.

메밀꽃술에 메밀전병, 메밀전, 메밀칼국수, 메밀새싹비비밥,

참 골고루도 먹었다. 눈호사 입호사.

 

'메밀꽃 필 무렵' 동이가 만들어진 물레방아가 얼어붙었다.

 

새 생명을 잉태할 지경의 남녀지정이 없는, 담백한 관계,

우리가 품은 새 생명은 다름 아닌 감사와 행복, 존경심까지.

 인연에 감사한다.

 

 

 

 

 

팜파스 휴게소에서 그네에 올랐다.

그네에 오르니 서정주의 추천사가 떠오른다.

윤실아, 그네를 밀어라.

바람을 타고 내 마음 부풀어 저 하늘에 닿을 때까지.

 

 

 

추천사楸韆詞

서정주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더미들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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