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여진 슬픔 / 강기원 절여진 슬픔 - 강기원 곤이젓, 창란젓, 아가미젓 저게 창자와 벌름거리던 숨구멍과 대구의 생기기였단 말이지 내 끊어진 애와 벙어리 가슴과 텅 빈 아기집도 들어내 한 말 굵은 소금에 절여 볼까 컴컴한 광 속에서 한 오백 년 푹 삭아 볼까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듬뿍 뿌려 맛깔스레 무쳐 볼까 그대 혀끝.. 시 - 필사 2007.07.06
고전적인 봄밤 / 박이화 고전적인 봄밤 - 박 이 화 송도기생 황진이의 사생활은 만고의 고전인데 신인가수 백모양의 사생활은 왜 통속이고 지랄이야 내가 보긴 황진이는 불륜이고 백모양은 연애인데... 그렇거 나 말거나 나는 가을밤 황국 같은 황진이도 좋고 봄밤의 백합 같은 백모양도 좋은데... 좋기만 한데 왜 이 시대엔 벽.. 시 - 필사 2007.07.06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 시 - 필사 2007.07.05
토막말 / 정 양 토막말 정 양 詩 이지상 곡 노래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줄로 쓴 말 대문짝만한 큼직한 글짜엔 시리디 시린 통증이 몸에 감긴다. "정순아 보구자퍼 죽것다 씨벌" "정순아 보구자퍼 죽것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그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 시 - 필사 2007.03.19
숙박계의 현대시사 / 박현수 숙박계의 현대시사 박현수 화양리에는 여관 아줌마만 모르는 현대시사가 있었다 여관에서, 아니 여인숙에서 하룻밤 자는데도 이름과 주소를 기록하여야 했던 궁색한 실록의 시절 뒤통수치던 출석부를 닮았던 검은 표지의 명부에 그 해 여름 몇 줄씩 사초를 필사했다 시선을 둘 데 없어 안절부절못하.. 시 - 필사 2007.03.04
사랑, 오래 통화 중인 것 / 문 인 수 사랑, 오래 통화 중인 것 / 문 인 수 거기는 비 온다고? 이곳은 화창하다. 그대 슬픔 조금, 조금씩 마른다. 나는, 천천히 젖는다. 시 - 필사 2007.02.10
연필로 쓰기 / 정진규 연필로 쓰기 - 정 진 규 한밤에 홀로 연필을 깎으면 향그런 영혼이 냄새가 방 안 가득 넘치더라고 말씀하셨다는 그분처럼 이제 나도 연필로만 시를 쓰고자 합니다 한 번 쓰고 나면 그뿐 지워버릴 수 없는 나의 생애 그것이 두 렵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고 지워버릴 수 있는 나의 생애 다시 고쳐쓸 수 .. 시 - 필사 2007.02.10
강 - 황인숙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마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마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 시 - 필사 2007.01.29
뷰티샵 낱말과일들 / 함기석 뷰티샵 낱말과일들 - 함기석 토마토 유기산과 비타민 A, C가 풍부해 여드름 많은 문장과 지성피부를 가진 문장에 좋다. 수박 이뇨작용을 하여 과잉된 자의식의 부기를 확실히 빼준다. 속껍질 간 것을 냉장심장에 넣었다가 팩으로 사용하면 문장에 윤기가 생긴다. 냉찜질이 필요한 시에 좋다. 레몬 산도.. 시 - 필사 2006.12.28
간 肝 / 윤동주 간 肝 /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양심과 자기 존엄성 회복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환상에서 현실로 귀환 그것을 지키려는 다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육체적 자아 정신적 자아 와서 뜯어 먹어라, 시.. 시 - 필사 2006.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