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635

백권대학 / 김갑수

바코드가 없는 1002쪽 짜리 특별한 책이다. 수필반 김 선생님이 건넸다. 단숨에 못 읽고 닷새 동안 읽었다. 자주진보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서언'을 읽는 데 인내심이 필요하다. 저자 말대로 주관적인 '책 에세이'다. 그것도 자주진보세력의 편중된 독서가 안타까워 그들을 위한 교육용이라는 것이다. 서언을 지나면 공감대가 확~ 넓어진다. ​ ​ ​ * 편중된 독서는 편중된 인격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역사와 시대에 대한 면역력과 적응력을 떨어뜨린다. 요컨대 무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능한 사람은 제 아무리 순수하고 열정적이더라도 역사를 바꾸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는 기껏 해야 추종자나 하수인에 머무를 따름이다. (12쪽) ​ * 최부는 제주도에 부임한 후 몇 달 안 되어 부..

놀자, 책이랑 2023.08.21

대문 바깥 / 이부림

작품으로만 만난, 일면식 없는 대선배님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같은 장소에 몇 번은 함께 있었다. 현대수필 윤교수님과의 인연이 눈에 선하다. 제1회 '산귀래 문학상' 시상식장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있다. 그 곳에 청바지와 흰 셔츠 차림의 60여 명의 차림 중에 내가 있었다. 윤교수의 미수기념으로 쓴 글이다. 찾아보니 1000쪽이 넘는 미수문집 423쪽에 있다. 지금 윤교수님 건강 상태를 생각하니 마음이 찌르르 하다. 임선희 선생님 문하라니 임선희 선생님 생전에도 만난 적이 있을텐데... 아니면 장례식장에서라도. ​ 이부림 선생은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손자녀 8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유복하다. 전세대에 당연하던 일이 지금은 더없이 복된 일이 되었다. 다정한 눈길, 따뜻한 감성이 잔잔하게 흐르는 일상이다. ..

놀자, 책이랑 2023.08.14

반 한 칸의 우주 / 박기숙

박기숙 선생님의 두 번째 수필집이 나왔다. 여든에 수필세계에 입성하셔서, 이제는 방 한 칸에서 우주를 그리신다. 2011년 큐슈문학기행에서 만난 인연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새 작품을 쓰면 내게 보내주시고, 잡지에서 내 수필 발표한 것을 읽으시면 감상도 전해주신다. 꽃누르미 스텐드와 부채를 여러번 선물 받았다. 꽃마다 뜻을 담은 손수 만든 작품을 받고 몹시 황송했다. 그때마다 힘이 없어서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말씀도 여러번 하셨다. 그러나 아직 건재하시다. 요즘은 주로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고 사진도 보내신다. 우리 나이로 95세다. 고운 모습도 여전하시다. 우러러 경의를 보낸다. ​ ​ ​ * 1929년 일제하 아버님은 바쁘셨는지 태어난 지 사흘 후에 갓난아기를 보러 오셨다. “계집애가 이리 입이 크냐?”..

놀자, 책이랑 2023.08.12

끙끙, 피서

이탁오를 다시 잡았다. 전에 4권을 읽고 라는 편지글 형식으로 쓴 적이 있다. 그때는 내 흥으로 썼는데 지금은 숙제로 다시 읽는다. 권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가 없다. 아들을 준 것 같기도 하고... '이탁오와 불교'를 이어봐야 한다. ​ ​ ​ 이것이 내 8월 피서다. ​ ​ * 어떤 사람이 만나기를 청하자, 탁오가 물었다. "당신은 성인이 되려고 하십니까?" 그 사람이 겸손의 말을 하고 있는데 탁오가 말했다. "성인도 무슨 특별히 다른 점이 없어요. 보통 사람들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성인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지요." (평전 445쪽) ​ *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저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

놀자, 책이랑 2023.08.08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좀 매력없는 제목이다.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보고 산 책인데 지난번 읽은 의 저자와 동명이인이다. 정치적 동물의 길과 인간의 길이 어떻게 나란히 가는지, 어떤 거리를 두고 서로 얽히는지에 대해 다소 시니컬한 어투다. 영화와 코미디는 좋은 자료다. 정치의 민얼굴을 들이밀어도 거북하지 않다. 적절한 명화와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 ​ * 조용히 은거하면서 자기 삶을 안위와 쾌락만 도모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일은 얼마나 유혹적인가. 그러나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29쪽) ​ *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

놀자, 책이랑 2023.07.13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1,2 / 이민진

책을 읽다가 약속을 잊은 건 처음이다. 수욜, 수업 후 읽고 있던 책이 궁금해서 점심을 안 먹고 달려왔다. 푹 빠져서 읽다가 저녁 8시에 하는 성당 독서모임을 잊었다. 이민진의 두 번째 작품 에 큰 박수를 보냈다. 거꾸로 읽은 첫 작품에도 코를 박았다. 세 번째 작품을 기다린다. ​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그의 호칭에서 그가 쓴 소설의 방향이 보인다.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 첫 편이다. 미국 이민자로서 겪는 청춘의 열정과 방황, 치열한 삶을 그렸다. 2001년 9월 11일, 9.11 사건을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을 그때 희생당한 한국계 미국인 '케이시'의 동생에게 "언니는 한 치의 후회도 없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행과 쇼핑을 좋아하고 단편소설과 시를 썼다는 '케이시 한'에게 영감을 받았다...

놀자, 책이랑 2023.07.02

최소한의 선의 / 문유석

코로나19 시기에 새로 나온 문유석의 책이다. 그동안 23년 판사 생활을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기로 했단다. 헌법을 주제로 해서 그런지 그동안 읽은 그의 책 중에서 제일 잘 안 읽힌다. 그럼에도 출간 한 달도 안 되어 2쇄를 찍었다. 인기는 여전한거다. 아니, 실은 믿고 사는 저자다. 크게 재미없어도 여전한 그의 솔직함에 끌려 끝까지 읽어나간다. ​ ​ * 『맹자』 「공손추편」에 이르기를 "불쌍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불쌍해하는 마음은 어짊의 근본"이라고 했다. ... ' 삶은 모두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왕이 다른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며,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가 있다. 그 마음으로 정치를 행하면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듯 천하를 다르릴 수 있다.' 사람에게 해를..

놀자, 책이랑 2023.06.30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 파스칼 키냐르

오랜만에 확 끌린 책이다. 총알배송으로 받아서 바로 읽었는데...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해독 불가한 난해함에 부딪치는데 흥미로운 건 뭔지. 고급진 글쓰기 교본이다. 시작부터 어렵다는 옮긴이의 말을 건너뛰었는데 다시 읽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2000년 콩쿠르 수상작 『떠도는 그림자들』로 선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천 편의 소설과 맞먹는 한 권의 책을 썼다. 단락 하나 하나가 한 편의 잠재적 소설이다." 숨겨진 책 몇 권을 찾는 건 읽은 이의 능력이다. 나는 숨겨진 책을 찾기는커녕 이 책도 다 들이질 못했다. 거듭 거듭 읽어야 할 듯. ​ 프론토 -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황제의 스승인 코르넬리우스 프론토, 1~2세기 로마의 문법학자, 수학자인 그는 파격적인 생각으로 당대에 ..

놀자, 책이랑 2023.06.24

평화 안에 머물러라 / 자크 필립

신부님과 하는 독서모임 두 번째 책을 친구가 줬다. 앗, 맛보기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거부할 수 없어 받아서 읽었다. 얇은 책에 너무도 지당하고 거룩한 말씀들이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라 슬렁슬렁 넘겼다. 자꾸 반복되니 가슴이 울렁거린다. 한때 뜨겁던 마음을 떠올리기도 하며 순한 마음이 된다. 보시기 좋게 살지도 못하면서 왜 이리 마음이 든든해지는지... 나는 참으로 뻔뻔하다. ​ ​ * 내적 평화의 필요조건은 '선한 의지'다. ... 이러한 선의, 곧 큰일에나 작은 일에나 언제나 하느님께 '예'라고 말하려는 슴관적 결의는 내적 평화의 필수 조건이다. 이와 같은 결의를 굳게 지니지 못하는 한 우리는 불안하고 슬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5쪽) ​ * 십자가의 성 요한이 생에 말년에 죽..

놀자, 책이랑 2023.06.15

책이 입은 옷 / 줌파 라히리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쓴 두 번째 산문집이다. 표지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썼다. 옷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쓰이는 시대다. 책의 표지는 책의 옷이다. 옷을 벗어야 속살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 줌파 라히리는 표지가 없는 발가벗은 책을 그리워한다. 학생시절 도서관에서 읽었던 표지를 떼어 하드커버로 묶은 책들을. ​ ​ * 어렸을 때부터 입은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내겐 고통이었다. 내 이름, 내 가족, 내 외모가 이미 특별하다는 걸 의식했기에 나머지 면에서는 남들과 비슷하고 싶었다. 남들과 똑같기를, 아니 눈에 띄지 않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스타일을 선택해야 했고 규칙에서 벗어난 특별한 스타일 때문에 내가 옷을 못 입는다고 느꼈다. (15쪽)..

놀자, 책이랑 202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