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섯 / 오봉옥

칠부능선 2015. 11. 16. 20:40

 

 

오봉옥

 

 

우리를 숨죽이게 한 건 3․8선이 아니었다

검문하러 올라온 총 든 군인도

검게 탄 초병들의 날카로운 눈빛도 아니었다

기찻길 건널목에 붉은 글씨로 써놓은 말 섯!

그 말이 급한 우리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두 다리로 짱짱히 버티고 서 고함을 지르는 섯,

그 뒤엔 회초리를 든 호랑이 선생님이

두 눈 부릅뜨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커다란 방점이 떠억 하고 찍혀 있는 것 같았다

멈춤 정도야 뭐 말랑말랑한 말로 느껴질 뿐이었다

섯에 비하면 정지나 스톱 같은 말도 그저

앙탈이나 부리는 언어로 느껴질 뿐이었다

남에서 올라온 내 발 앞에 꽝,

대못을 박고 가로막는 섯!

그 섯 가져와 자살바위 옆에 세워두고 싶었다

그 섯 가져와 기러기 떼 날아가는 노을 속에

슬그머니 척, 걸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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