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군데 원고를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되지도 않는 글을 발표하는 건 내게도 그 잡지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머리 무겁던 일을 간단히 해결한 셈이다.
나도 원고청탁을 하는 입장이기에 가능하면 수락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요즘은 차분히 책상에 앉는 시간이 적으니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 없다.
소설은 발로 써야 하고, 시는 영감으로 쓴다면 수필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도 엉덩이로 쓴다.
견문과 지식을 쌓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를 생각한다.
소나무는 소나무지만 넘들과 확실히 다른 특성,
자기만의 향취가 있는 글, 다산이 문제가 아니다. 사양이나 거절도 좋은 기술이다.
수령 5백년의 저 처진소나무처럼 아래로 아래로 땅과 맞닿을때까지 내려가 보는 것도 좋다.
매년 봄에 막걸리를 탄 물을 뿌리 주변에 뿌려준단다. 막걸리에 비법이 있는 걸까.
취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엄마, 왜 땅이 흔들거리지.
엄마, 왜 눈물이 나지. 슬프지도 슬플 것도 없는데...
주정할 때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