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오십 세

칠부능선 2011. 12. 18. 13:17

 

오십 세

문정희


나이 오십은 콩떡이다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화려한 뷔페상 위의 콩떡이다
오늘 아침 눈을 떠 보니 글쎄 내가 콩떡이 되어 있다
하지만 내 죄는 아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시간은 안 가고 나이만 왔다
앙큼한 도둑에게 큰 것 하날 잃은 것 같다
하여간 텅 빈 이 평야에
이제 무슨 씨를 뿌릴 것인가
진종일 돌아다녀도 개들조차 슬슬 피해 가는
이것은 나이가 아니라 초가을이다
잘하면 곁에는 부모도 있고 자식도 있어
가장 완벽한 나이라고 어떤 이는 말하지만
꽃병에는 가쁜 숨을 할딱이며
반쯤 상처 입은 꽃 몇 송이 꽂혀 있다
두려울 건 없지만 쓸쓸한 배경이다

 

 

*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나이 사십을 기다리던 때가 떠오른다.

서른 다섯을 넘고부터는 과연 사십이 되면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깃들까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되었다.

불혹,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어지는지, 그것도 사뭇 궁금하였다.

그러나,

나이 사십은 내 노력없이 슬그머니 찾아왔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럭저럭 무던한 얼굴,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는데... 표정은 그렇다쳐도

불혹, 어림없는 야그다.

어떠한 유혹이 있지 않아도 흔들린다. 마구마구...

그러면서 오십이 되었다. 이건 기다리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거저 왔다.

여전히 흔들리며, 어떤 표정으로 굳어질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배짱이 좀, 늘었다. 그냥 나답게 살면 되는 거. 생긴 그대로...

무엇인가 빛나게 하는 것의 배경이면 족하다.

 

드디어 오십을 맞는 친구여!

그대는 저그 문정희 시인의 저런 상념이 어울리지 않는다오.

절대 동안의 그대는 마음 푹 놓으시라!

여전히 구엽고, 게다가 배려심까지 겸비한 사랑스러운 여자니까.

 

숫자 육십과 더 친해진 나도 걱정없다. 

싱싱한 그대들 곁에서 순화되고 동화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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