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처사, 남명

칠부능선 2016. 6. 15. 15:32

처사, 남명

노정숙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선생님께서 자주 오르시던 지리산은 연두를 거두고 진진 초록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산길 군데군데 돌계단을 두어 걷기 좋은 둘레 길을 만들어서 연일 인파로 북적입니다. 지리산은 옆구리를 파헤쳤는데도 여전히 신령스러운 기운을 풍기고 있습니다. 걷다 보면 지금도 바위와 나무에 이름을 새기는 변변찮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보면 개탄하시는 선생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름이란 스스로 새기지 않아도 행적에 따라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졸음을 막기 위해 물을 가득 담아들고 밤을 지새웠던 선생님 모습을 그려봅니다. 밤은 사색의 시간이라 배우는 사람은 잠도 많이 자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요. 저는 정작 공부할 시기에는 그걸 몰랐지만 늦게 세상사가 궁금해서 배울 게 많아졌습니다. 요즈음 밤에 많이 깨어있던 건 사색이 필요해서였군요.

선생님께서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시며 주자朱子 이후에는 저술을 남길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술은 계속 이어져 지금은 책의 홍수 속에 산답니다. 저마다의 주장과 사연이 많아 선택의 어려움이 있기는 해도 호기심 많은 제게는 풍성한 혜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의 목적은 식견을 높여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판단을 하기위한 것이기에 고상한 것만 추구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양반들에게 경만 읽지 말고 몸소 마당을 쓸고 꽃에 물을 주라고 하셨지요. 머릿속 만리장성보다 발부리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 치우는 손이 낫습니다.

선생님은 걸음을 뗄 때마다 치릉치르릉 소리가 나는 쇠방울惺惺子을 달고 다니셨지요.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칼에 새긴 ‘內明者敬 外斷者義내명자경 외단자의’는 안에서 밝히는 것은 경이며 밖에서 결단하는 것은 의라는 말씀이지요. 칼을 찬 선비의 풍모에서 힘이 전해집니다. 걸음마다 울리는 방울 소리에 정신을 깨우고, 공경하는 마음과 의로움을 가지고 살면 화평한 세상은 당연히 오겠지요.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바른 생각과 실행의 거리가 너무 먼 게 문제입니다. 유불선과 주자학을 통달하고서 만든 우리 몸의 지도 - 신명사도를 그려 마음 안에서 지킬 것과 마음 밖에서 금할 것을 도표로 가르치셨지요.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일에 주력하신 선생님, 잃어버린 마음이 양심인가요. 마음의 중심, 순정한 첫 마음과 뜨겁던 두 번째 마음을 앞세워 봅니다. 애끓는 마음, 한숨과 함께 지그시 눌러야 하는 마음. 시시로 비겁해지는 마음이 바쁘게 수런거립니다.

선생님께서 최고로 꼽은 주자마저 말년에 권신들이 해로운 학문으로 몰아서, 박해를 받고 벼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런 사화士禍의 시대에서 선생님은 정치에 나서지 않고 초야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로 하셨지요. 그러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건 일갈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임금이 단성 현감으로 부르실 때 벼슬을 사양하면서 올린 상소문은 기가 막힙니다.

관리들의 부패와 무능을 탓하면서 ‘대비(문정황후)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고 하나 깊은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고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일 뿐입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 오직 전하의 마음 하나에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배짱도 참 좋으세요. 왕조시대에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더욱이 ‘물은 백성이며 배는 임금이다.’ 배는 물을 순행할 때도 있고, 역행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물 위에서의 배이지, 배의 물일 수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배는 예나 지금이나 이 엄연한 이치를 자주 잊는가봅니다. 임금은 백성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민암부民巖賦’는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벅차게 다가옵니다.

선생님의 호 남명南冥은 장자에 나오는 북쪽의 큰 새 붕이 구만리장천을 날아 도착한 남쪽의 어두운 바다를 뜻하지요. 처사處士를 자처하는 데 비해 장대합니다. 선생님의 호방함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여성인권에 대한 생각입니다. 굶어 죽을지언정 청상과부가 재가를 해서는 안 된다니요. 여자가 재혼하는 것을 호구지책으로만 보신 건 의외입니다.

그 시대에도 백성은 깨어있어 두 번의 반정反正에도 불구하고 한심한 왕조시대를 지나며 갖가지 수모와 고난을 겪었습니다. 개화된 세상에서 정신은 내려두고 먹고, 입고 사는 일에 매진하여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풍족해졌습니다. 몇 번의 정권이 바뀌며 기적을 이루기도 했고,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 감격할 일도 많았습니다. 버려두었던 정신을 추슬러야 할 때가 많이 지났습니다. 세상이 바뀌어 지금은 여자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답니다. 배는 순항이라고 하는데 자주 멀미가 납니다.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임금에게 칼날 같은 직언을 날리던 선생님, 도저한 정신으로 부조리에 야합하지 않고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셨지요. 가난한 도덕군자 안회를 흠모하며 곤궁이야말로 자신에게 통달하는 길이라고 설파하셨지만, 만년에 선생님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끼니 걱정과 영양실조, 치아부실을 탄식하고 늦게 얻은 자식이 죽자 애통해 하셨지요. 강한 결기는 걸기乞氣를 부르나 봅니다.

마지막 말씀도 ‘이제는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 염려하신대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맹렬하게 싸운 곽재우, 정인홍을 비롯한 많은 의병장이 선생님의 제자였지요. 밥하던 솥도 깨부수고 타고 왔던 배도 불 지른 뒤에 죽음을 각오하고 출전하여 기어이 섬멸하라는 남명철학, 선생님의 행동정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이곳은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며 창의력까지 발휘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깨어있는 정신을 설하신 지 오백 년이 지났지만, 정치는 예전과 다름없이 무겁고 어둡습니다. 앞으로 정치도 인공지능 로봇에게 지혜를 구해야 할까요.

산천재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에 운무가 산허리를 어루만집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낡은 처마 아래 풍경을 깨웁니다. 선생님의 방울 소리를 떠올리며 허리를 곧추세웁니다. 온기 없는 로봇보다 변화무쌍한 자연과 살가운 사람에 기대어 살아야겠지요. 자주 출렁이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선생님의 우레와 같은 말씀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수필미학> 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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