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을
오봉옥
1
쉰을 넘으니
하루하루가 뜨겁다
내 가슴은 시방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오늘은 어디에 눈이 팔릴지
몰랐다, 반체재 인사라던 내가
이 땅이 좋아 끙끙 앓게 될 줄은
저물어간다는 건
슬픈 일만도 아니다
축복이다
몸이 사위어가니
마음의 눈도 생긴 것
내 발걸음은 시방
가젤의 발걸음보다 가볍다
2
가녀린 꽃들이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해도
알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꽃이나 보고 산다는 건
시치였으므로
스치면 베일 것 같은 눈빛으로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으므로
어둑발 속에서
자신을 지운 나무들은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며
내일을 기약한다지만
난 아무런 기약도 없이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꽃보다 짱돌을 믿던 시절이었다
3
서른이 지나도
마흔이 지나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허공 속에 숨겨 두었는지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가
산에 오를 때에도
꽃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발자국 떨어진 돌 틈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죽은
내 가슴은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4
중늙은이가 되어
눈물이 많아졌다
이제 썩은 사과 하나에도
눈이 간다
뜨겁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으랴
썩은 사과라 해도
단내 풍기며 살고 있다
빠개질 듯한 가슴을 잃고도
누군가에게로
단내 풀풀 풍기며 가고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므로
마지막까지 저를 한번
밀어붙여 보는 것이므로
5
가슴이 뛴다
무엇을 볼 수 있으려나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처럼
날이면 날마다 둔갑하는 꽃들이 나무들이
오늘은 무슨 패를 보여주려나
호수는 또
무엇을 삼키고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있으려나
산을 오르자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새벽 숲도
그런 내 마음을 읽엇는지
말없이 어깨를 감싸 안는다
6
저녁노을이
제 몸을 홀라당 태우고
사라져가듯이
죽을 때까지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황소바람 부는 겨울에도
가슴 한켠에
꽃망울 밀어 오리고
오래오래 속닥이고 싶다
떠나야 할 때가 오거든
망망대해에 배 한 척 띄우듯이
꽃잎 같은 목숨
가만히 가만히
허공 속에 뿌리게 하리라
그리하여
허공 속에서 노를 젓는 나비가 되어
저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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