섯!
오봉옥
우리를 숨죽이게 한 건 3ㆍ8선이 아니었다
검문하러 올라온 총 든 군인도
검게 탄 초병들의 날카로운 눈빛도 아니었다
기찻길 건널목에 붉은 글씨로 써놓은 말 섯!
그 말이 급한 우리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두 다리로 짱짱히 버티고 서 고함을 지르는 섯,
그 뒤엔 회초리를 든 호랑이 선생님이
두 눈 부릅뜨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커다란 방점이 떠억 하고 찍혀 있는 것 같았다
멈춤 정도야 뭐 말랑말랑한 말로 느껴질 뿐이었다
섯에 비하면 정지나 스톱 같은 말도 그저
앙탈이나 부리는 언어로 느껴질 뿐이었다
남에서 올라온 내 발 앞에 꽝,
대못을 박고 가로막는 섯!
그 섯 가져와 자살 바위 옆에 세워두고 싶었다
그 섯 가져와 기러기 떼 날아가는 노을 속에
슬그머니 척, 걸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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