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어떤 일의 순서 / 임창아

칠부능선 2017. 2. 14. 23:34

어떤 일의 순서

-임창아

 

 

남해에서 여고 다닐 때

우리 집 수소 교미 한 번 붙인 돈은

자취하던 내 한 달 생활비였다

덤으로 나는

남녀관계와 성교육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눈 뜨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귀하신 수컷은 제법

비싸게 놀 줄 알았다

암컷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공연히 꼬리 흔들어 쇠파리를 쫓거나

엉덩이 슬슬 피해 가며

음부 더부룩한 암컷 몸 달군다

그러다 어지간하다 싶을 때 한순간

사정없이 올라타는 수컷

9회 말 끝내기 안타처럼

한 방에 해결하는 그 저력

놀란 암컷은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염치없이 질금질금 물똥 싸제끼지만

절정은 언제나 너무 짧다

그처럼 어떤 일에도 순서는 있는 법

사정 끝내고 암컷 골고루 핥아주는

수컷의 신사적 마무리까지

저 말없음의 예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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