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의 순서
-임창아
남해에서 여고 다닐 때
우리 집 수소 교미 한 번 붙인 돈은
자취하던 내 한 달 생활비였다
덤으로 나는
남녀관계와 성교육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눈 뜨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귀하신 수컷은 제법
비싸게 놀 줄 알았다
암컷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공연히 꼬리 흔들어 쇠파리를 쫓거나
엉덩이 슬슬 피해 가며
음부 더부룩한 암컷 몸 달군다
그러다 어지간하다 싶을 때 한순간
사정없이 올라타는 수컷
9회 말 끝내기 안타처럼
한 방에 해결하는 그 저력
놀란 암컷은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염치없이 질금질금 물똥 싸제끼지만
절정은 언제나 너무 짧다
그처럼 어떤 일에도 순서는 있는 법
사정 끝내고 암컷 골고루 핥아주는
수컷의 신사적 마무리까지
저 말없음의 예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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