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겨울밤 / 황인숙

칠부능선 2016. 12. 23. 17:09

   

        겨울밤

 

황인숙



나는 제 방에 음악을 불어넣는

늦봄의 바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수은 얼음 알갱이의 눈보라로

네 방을 질척질척 얼리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도 내가 춥다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은 황폐함

피로, 암울 막막, 사납게

추위가 삶을 얼려 비트는 황폐함

그러면서도 질기게도

죽을 것 같지 않은 황폐함

 

모르는 별로 너 혼자

추방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 영혼을 뒤쫓는 것이

수은 얼음 알갱이의 눈보라라면?

 

아, 나는 제 영혼에 음악을 불어넣는

늦봄의 포근한 바람이고 싶었다

 

사실 나는 죽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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