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애
장석주
가을의 끝이다 열 몇 개의 파탄이 지나간다
양파를 썰자 눈물이 났다
개수대 아래로 물이 조용히 흘러들어갔다
당신이 떠나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장롱 밑에서 죽은 거북이 나왔다
우리는 살면서 잦은 불행에 무뎌졌다
나는 접시를 깼다 실수였다 앞니가 깨졌다
분별은 무거워서 분별을 멀리 하고 살았다
짧은 황혼이 지고 빛이 희박해질 때
나무들이 목발을 짚고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누군가 허둥거리고 어디선가 물이 얼자
동물원 원숭이들은 몸을 웅크린 채 잠들었다
연애는 슬프거나 우습고 빛나거나 치졸했다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면서
내 몸 어디선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멀써 여름과 겨울이 열 번씩 지나갔다
날씨는 늘 나쁘거나 좋았지만
영혼은 가장 무른 부분에서 부퍠가 시작되었다
나는 가끔 무서운 생각을 했다
<문학의오늘> 혁신호 Vol.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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