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그대
노정숙
지난 봄날,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 문화제에 갔었다.
울먹이는 시민의 말은 내 마음을 읽었고, 위로의 노래에 눈물샘이 열렸다.
추모시 낭송은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을 일으켜 세웠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라’ 간절한 기원을 담은
노란리본이 등불 아래서 힘없이 흔들렸다.
비온 후 싸늘하던 그 밤, 광장 가득 촛불을 들고 있던 마음들은 갸륵했다. 애도의 물결로 온 나라가 출렁였다.
가까이 있는 분향소는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헌화를 하고 기도를 올렸다.
정치는 삼류라도 시민정신은 일류다.
거대한 물신이 생명을 능멸했다.
용서하지 마라, 부디 용서하지 마라. 생명 아닌 것을 섬기는 못난 인간들을.
비통을 새기던 참담한 시간, 일상이 죄스럽던 시간을 지나왔다.
쉽게 웃고 마구 떠들던 별일 없는 나날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가.
무엇보다 생명을 귀히 여기며, 관행이라 불리는 불법과 탈법을 버리고 원칙을 따라야 했다.
오래된 악습을 버리고 기본을 바르게 세워야 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낡을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했다.
잔인한 봄을 딛고 열정 잃은 여름을 건너 가을에 당도했다.
풍경은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위로했다. 아니, 돌아오지 않는 생명을 떠올리며 새로이 통한에 사무치게도 했다.
그대의 죄 없는 고통은 내 것이 되어 오래 아팠다.
옅어지는 슬픔이 부끄럽다. 힘이 되지 못한 분노가 부끄럽다.
울분만으로 어쩌지 못하는 건 이 땅에 두 발 딛고 서있는 산 자의 비애다.
시간이 더 흘러야 하는가. 도덕의 나침반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
미안하다.
여전히 몽매해서 미안하다.
아직도 파렴치해서 미안하다.
피멍으로 남긴 그대 향기 오래오래 기억하마, 다잡는 맹세마저 미안하다.
하늘 맑은 가을, 염치없다.
차라리 혹한의 겨울이 위로가 될까.
<에세이포레> 201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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